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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벚꽃이 만발한 숲에서 - 사카구치 안고 (안영신 옮김, 작가와비평)

by handaikhan 2023. 12. 14.

 

일본 문학 컬렉션 3 - 비밀이 묻힌 곳

 

목차

에도가와 란포
D언덕의 살인 사건
심리 테스트

다니자키 준이치로
아내 죽이는 법
비밀

다자이 오사무
범인

사카구치 안고
벚꽃이 만발한 숲에서

나쓰메 소세키
불길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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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 - 벚꽃이 만발한 숲에서 (1947년)

 

벚꽃이 피면 사람들은 술병을 들고 다니며 경단을 먹기도 하고 꽃나무 아래를 걷기도 합니다. 경치가 좋네, 봄기운이 완연하네, 감탄하면서 한껏 기분이 들뜨게 되는데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벚꽃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술에 취해 토하고 싸우고 하는 건 에도 시대에 와서야 생겨난 풍습입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벚꽃 나무 아래를 섬뜩한 곳으로만 여겼지 경치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요즘엔 꽃구경하는 사람들로 벚꽃나무 아래가 시끌벅적하지만, 그곳에서인간의 모습만 지우면 아주 무서운 풍경으로 변해 버립니다. 노(일본의 전통 가면 음악극)에도 벚꽃나무 숲에서 광기를 일으키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납치된 아이를 찾아 헤매던 어머니가 숲으로 들어갔다가 꽃그늘에 아이의 환영이 나타나자 미쳐서 꽃잎 속에 파묻혀 죽는 내용이지요. 사람이 없는 벚꽃나무 아래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던 겁니다. (p.203-204)

 

남자는 도시가 싫었습니다. 처음엔 신기했던 도시의 모습에 익숙해지자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중략).....

남자는 무엇보다도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인간은 정말 지겨운 존재야.'

그는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결국 그는 인간이 귀찮고 성가셨던 겁니다. 큰 개가 걸어가고 있으면 작은 개들이 짖어 대기 마련인데 남자는 큰 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삐치고 시기하고 토라지거나 생각하는 게 싫었습니다.

'산 짐승들이나 나무, 시냇물과 새들은 귀찮지 않았는데....'

"도시는 정말 따분한 곳이야."

그는 절름발이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저는 도시가 지루하지 않아요."

절름발이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온종일 음식을 장만하고 빨래를 하고 동네 사람들과 노닥거렸습니다. 

"도시에선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심심하지 않아요. 산은 심심해서 싫은데."

"너는 떠드는 게 지겹지 않아?"

"당연하죠. 누구든 떠들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는 법이니까요."

"나는 말을 하면 할수록 지겨워지던데."

"당신은 말을 하지 않으니까 지겨운 거예요."

"그럴 리가 없어. 말을 하면 지겨우니까 안 하는 거야."

"그래도 말을 좀 해보세요. 분명 지루함을 잊게 될 테니까."

"무슨 말?"

"뭐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죠."

"하고 싶은 말이 뭐가 있다고."

남자는 진저리를 치면서 하품을 했습니다. 

도시에도 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 위에는 절이나 암자가 있고 오히려 그곳에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산에서는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세상에, 집이 이렇게 많다니. 아니, 저렇게 풍경이 지저분할 수도 있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매일 밤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낮에는 거의 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죽이는 일도 따분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흥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칼로 치면 머리가 툭 떨어져 굴러갈 뿐이었습니다. 목은 부드러웠습니다. 뼈에 걸리는 느낌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무를 베는 것 같았습니다. 그 머리가 무겁다는 사실이 오히려 좀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여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종각에서는 중 한 명이 악에 받쳐서 종을 치고 있었습니다.

왜 저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는 걸까.'

그는 생각했습니다.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이런 놈들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면 나 같아도 놈들의 머리만 잘라서 함께 사는 쪽을 선택하겠어.'

하지만 끝도 없는 여자의 욕망이 이젠 지겨워졌습니다. 여자의 욕망은 말하자면 끝없이 하늘을 날아가는 새와 같았습니다. 쉬지 않고 계속 직선을 그리며 날고 있었습니다. 그 새는 지칠 줄을 몰랐습니다. 항상 상쾌하게 바람을 가르며 기분 좋게 훨훨 끝없이 날아갈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냥 새였습니다.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니다가 간혹 계곡을 건너는 정도가 고작이었고, 나뭇가지에 앉아 졸고 있는 올빼미와 비슷했습니다. 그는 민첩했습니다. 몸놀림이 유연했고 걸음도 빨랐으며 동작엔 생기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엉덩이가 무겨운 새 같았습니다. 끝없이 직선으로 날아가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남자는 산 위에서 도시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새 한 마리가 직선으로 날아갑니다. 하늘은 낮에서 밤으로, 밤에서 낮으로 밝음과 어둠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저 무한한 명암만 있을 뿐입니다. 남자는 무한의 의미를 제재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다음 날, 또 다음 날, 명암의 무한한 반복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습니다. 생각에 지쳐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게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p.298-232)

 

벚꽃나무 숲에 꽃이 만발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남자는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한 날에 꽃이 활짝 피었다 한들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요. 그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벚꽃나무 숲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정말로 온통 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바람에 날려 꽃잎들이 하늘 하늘 떨어지고 있었고, 땅은 온통 꽃잎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이 꽃잎들은 대체 어디서 떨어진 거지?'

활짝 핀 꽃들이 머리 위로 빼곡하게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서 꽃잎이 떨어졌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활짝 핀 꽃나무 밑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주위는 고요했고 점점 서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문득 여자의 손이 차가워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순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귀신이라는 걸. 갑자기 사방에서 차가운 바람이 꽃나무 아래로 밀려들었습니다.

남자의 등에는 온몸이 보라색인 커다란 얼굴의 노파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고 구불구불한 머리는 초록색이었습니다. 남자는 달렸습니다. 몸을 흔들어 떨쳐 버리려 했습니다. 귀신은 손에 힘을 주고 그의 목을 졸랐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귀신의 손을 풀었습니다. 양손이 벌어진 틈새로 목을 빼내자 귀신은 등에서 미끄러져 털썩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귀신에게 달려들 차레였습니다. 귀신의 목을 졸랐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온 힘을 다해 여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눈이 침침했습니다. 눈을 크게 떠봐도 시력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목을 졸랐던 건 여자임이 분명했고 여자의 시체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호흡이 멈췄습니다. 힘도 생각도 모든 게 동시에 멈춰 버렸습니다. 여자의 몸에는 이미 여러 개의 벚꽃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여자를 흔들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며 끌어안았습니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엎드려 울었습니다. 이 산에 들어오고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운 적이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등에는 하얀 꽃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벚꽃나무 숲의 거의 한가운데였습니다. 꽃에 가려서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나 불안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벚꽃 숲 끝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도 없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사뿐사뿐 꽃잎이 계속 떨어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벚꽃이 만발한 숲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거기에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겐 이제 돌아갈 곳이 없었으니까요.

벚꽃이 만발한 숲의 비밀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건 '고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이제 고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고독 그 자체였던 겁니다.

그는 처음으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머리 위에 꽃이 있고 그 아래는 고요하고 끝없는 허공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늘하늘 꽃이 내립니다. 그게 전부였고 다른 어떤 비밀도 없었습니다.

얼마 후 뭔가 따뜻한 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근느 꽃과 냉기에 감싸여 따뜻하게 부풀어 있는 ㄱ느것이 자신의 가슴속 슬픔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여자의 얼굴 위에 떨어진 꽃잎을 치워 주려고 손을 대는 순간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엔 꽃잎만 쌓여 있을 뿐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몇 장의 꽃잎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잎에 손을 뻗었을 땐 그의 손도, 그의 몸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자리는 꽃잎과 차가운 허공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p.239-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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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坂口 安吾, 1906년∼1955년)

일본의 문학가로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炳五へいご)이다.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 <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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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타락론 - 사카구치 안고 (최정아 옮김, 책세상)

일본 호러 걸작선 (임희선 옮김, 책세상)

신주로 사건수첩 - 사카구치 안고 (박현석 옮김, 현인)

사카구치 안고 선집 (김유동 옮김,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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