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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 - 신경숙 (문학과지성사)

by handaikhan 2023. 8. 9.

신경숙 - 풍금이 있던 자리 (1992년)

 

어느 동물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마리의 수컷 공작새가 아주 어려서부터 코끼리거북과 철망 담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주고받는 언어가 다르고 몸집과 생김새들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느덧 수공작새는 다 자라 짝짓기를 할 만큼 되었다.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 멋진 날개를 펼쳐보여야만 하는데 이 공작새는 암컷 앞에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엉뚱하게도 코끼리거북 앞에서 그 우아한 날갯짓을 했다. 이 수공작새는 한평생 코끼리거북을 상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다....알에서 갓 깨어난 오리는 대략 12-17시간이 가장 민감하다. 오리는 이 시기에 본 것을 평생 잊지 않는다. - 박시룡, <동물의 행동> 중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막 봄이 와서,

여기저기 참 아름다웠습니다. 산은 푸르고....푸름 사이로 분홍 진달래가...그 사이....또...때때로 노랑 물감을 뭉개놓은 듯, 개나리가 막 섞여서는....환하디환했습니다. 그런 경치를 자주 보게 돼서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곧 처연해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걸 보면 늘 슬프다고 하시더니 당신의 그 기운이 제게 뻗쳤던가 봅니다. 연푸른 봄산에 마른버짐처럼 퍼진 산벚꽃을 보고 곧 화장이 얼룩덜룩해졌으나.

저, 저만큼, 집이 보이는데,

저는, 집으로 바로 들어가질 못하고, 송두리째 텅 빈 것 같은 마을을 한바퀴 돌고도...또 들어가질 못하고...서성대다가 시끄러운 새소리를 들었어요. (p.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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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申京淑, 1963년 1월 12일 ~ )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정읍에서 보냈으나, 1979년 구로공단 근처의 전기회사에 취직하여,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산업체특별학급에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에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 출간된 《풍금이 있던 자리》가 평단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약 스타 작가로 도약, 등단 후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대표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8년 발간된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미국, 영국, 폴란드 등의 22개국에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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