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한국문학 413 (80)
목차
신상웅
돌아온 우리의 친구
끝없는 곡예
이균영
어두운 기억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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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웅 - 돌아온 우리의 친구
우리는 토의 끝에 그를 대대적으로 환영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일 년 일 개월 만에 김포 공항에 귀국하는 그를 맞기 위해 우리는 밤 여덟 시에 공항 입국자 출구 앞까지 나기기로 결의했다. 우리가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사람은 아예 그날 하루 일터를 쉬거나 배탈 핑계를 대고 조퇴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그를 위한 우리의 환영 계획은 대대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합의에 이르고 나자 우리 가운데 하나가 중얼거렸다.
"녀석은 행복하겠다."
다른 하나가 받아 말했다.
"도열해 서 있는 우리를 보면 기분 좋겠지?"
"맞았어. 녀석은 행복해.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기나긴 여행도 해 보고."
하고 또 다른 하나가 말을 받았다.
"그런 비행기에선 영화도 틀어 준다며?"
"그럼 영화 보고 싶음 입장권 따로 사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가야 되나?"
"누가 알아."
"왕복 비행깃삯이 백만 원이나 된다면서?"
그는 우리한테 보낸 편지에 썼었다. 왕복 비행깃삯만도 우리 돈으로 백만 원씩이나 된다고. 그런데 일 년 계약이 끝나서 다시 일년을 더 연장하겠다고 하면 한 달 휴가를 주고 그 백만 원씩이나 되는 왕복 비행기 표를 끊어 주어 본국에 다녀오게 한다고. (p.9-10)
타는 듯한 열기 속의 사막, 그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기름 탱크의 벽에 달라붙은 페인트 롤러를 굴려 나가다 보면 느닷없이 비 오듯 하는 땀이 말라 버리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더 배어날 땀도 남지 않은 채 장작개비처럼 꾸들꾸들 말라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 버릇처럼 불덩이같이 달궈진 탱크의 철판에 등을 붙이고 지상을 내려다보게 된다고 그는 썼다.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지상의 모래밭이 마치 파도가 출렁이는 시원한 바다처럼 보이지. 착각이 아니야. 현기증 탓이야.
그럴 때 생각느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거짓말이 아냐. 죽음이야. 허리를 묶은 밧줄을 풀고 슬쩍 탱크를 차면 한 장의 종이처럼 간단히 땅으로 날아 떨어질 수 있을 거란 생각. 몸의 물기란 남김없이 증발되었으므로 뼈가 부서지고 살이 터져도 피가 흐르지 않을 거 아니겠어.
나는 그런 충동을 하루에 적어도 네 번은 받고 있어. 어떤 고통도 어떤 인내도 잊은 행복한 나의 시체. 그때의 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겠지?
그런 그가 다음 편지에서 일 년 연장 고용 계약서에 서명했음을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딱 일 년만 더 머무른 다음 돌아가겠다고 쓴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결단을 내린 그에게 애처로운 느낌마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빈털터리로 남아 있는 우리가 갑부가 되어 가고 있는 그를....지상의 온도만도 섭씨 40도라면 공중에 떠 있는 그를 휘감는 열기는 도대체 몇 도나 되는 것일까.
그의 느닷없는 귀국에 대한 우리의 환영 계획은 그러므로 너무나 당연했다. 일 년을 연장해서 머물기로 하고 겨우 한 달 만에 그는 계약을 파기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끝없이 현기증에 시달리는 고통을 청산하고 충동적인 유혹을 떨쳐 버리고 돌아오는 그가 아닌가. 결정을 내린 순간 그는 소리쳤을 것이다. 야, 이 더러운 자본아, 하고. 돈의 부피가 커지면 자본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불러 주니까. 아니, 그가 어땠는지 누가 알랴. (p.24-26)
얘, 눈이 끝없이 펑펑 쏟아지는 거 있지. 그럴 때면 그 눈을 빨간 피로 물들이며 죽고 싶은 거 있지. 우리는 여대생들의 그런 얘기를 가물가물 귓가로 들으며 돈짝만한 세상을 안주로 집어 먹으며 끝없이 소주잔을 목구멍으로 들어부었다. 세상에 죽고 싶은 것도 참 여러 질이구나, 하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눈이 행복한 살인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정말 잠시뿐이었다. (p.27)
현지까지 가서 그를 안내하여 오고 있는 그의 남동생은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주춤하고 걸음을 멈춰 섰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물기로 번들거렸다. 그러나 그는 역시 남자였으므로 오래 지체하지 않고 곧 문 앞을 떠나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제서야 우리가 공항 건물 밖에서 그토록 오래 떨고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를 차마 만날수 없어서였던 것을 알아차렸다.그에게 줄 꽃다발을 뭇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그녀의 둘째 아들 - 아직도 까까머리 고등학생인 그 둘째 아들이 가슴에 안고 다가서는 하얀 사각의 곽 위에다 검은 리본이 드리워진 우리의 꽃다발을 얹었다.
그러나 한 줌의 재를 위한 꽃다발로는 그건 너무나 흐드러진 풍요였다. 너무나. (p.36)
<작품 이해>
<돌아온 우리의 친구>는 인력 수출의 문제점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이 일자 돈을 벌기 위해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던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렸다. 마침내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친구의 사연 속에서 산업화를 내세우며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 경제 신화의 그늘을 독특한 필치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의 재미는 행복한 귀환으로 독자를 이끌고 갔던 이야기의 흐름이 마지막에 비극으로 끝나는 극적 전환에 있다. 특히 자본의 폭력 앞에 무참히 무너지는 인간 현실이 눈길을 끈다. 예리한 인식이 배어 있으며 자기기만과 이중적 인간형을 드러내어 경종을 울리려는 현실 의식이 있다. 또한 현실 문제에 대해 풍자와 아이러니의 칼날을 과감히 구사하는 기법적 완성도가 뛰어나며, 궁극적으로 인간애를 높이 고양시키려는 휴머니스트이자 사실주의적 태도가 깔려 있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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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웅(辛相雄, 1938년 11월 10일 ~ )
대한민국의 소설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경북 의성에서 성장했으며,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세대』지 신인문학상에 중편 『히포크라테스 흉상』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진중한 역사의식과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돋보이는 중량감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여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시대의 모순과 개인적 갈등을 밀도 있게 조명한 그의 소설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강한 흡인력을 행사하고 있다. 장편 『심야의 정담(鼎談)』으로 제6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국펜클럽 사무국장과 중앙대 예술대학원장을 역임, 현재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작품 『히포크라테스 흉상』, 『분노의 일기』, 『쓰지 않은 이야기』, 『돌아온 우리의 친구』, 장편 『배회』, 『일어서는 빛』, 『바람난 도시』, 『심야의 정담』 등 신상웅전집(총10권)이 있다. 셰익스피어30년 연구와 번역에 열정을 바친 신상웅 옮김 『셰익스피어전집(총8권)』으로 제3회 ‘춘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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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정담 - 신상웅 (동서문화사)
분노의 일기 - 신상웅 (동서문화사)
돌아온 우리의 친구 - 신상웅 (아시아)
돌아온 우리의 친구 - 신상웅 (창비)
히포크라테스 흉상 - 신상웅 (동서문화사)
신상웅 전집 (동서문화사)
셰익스피어 전집 (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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