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 20년 후 (1906년)
담당 구역을 순찰 중인 한 순경이 인상적인 모습으로 대로변을 걸어가고 있었다. 주위에서 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그의 인상적인 행동은 습관적인 것이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밤 10시가 채 못 되었지만, 비를 품은 찬바람이 불어 거리에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드물었다.
건강한 체구의 순경은 약간 뽐내는 걸음걸이로 걸어가면서 문단속을 살피기도 하고, 기묘하고 재치 있는 몸짓으로 곤봉을 휘두르다가는, 가끔씩 몸을 돌려 평화로운 거리를 주의 깊게 바라보기도 하면서 훌륭한 평화로운 거리를 주의 깊게 바라보기도 하면서 훌륭한 평화의 수호자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지역은 일찍 문을 닫는 곳이었다. 이따금 담배 가게나 밤새워 영업을 하는 간이식당의 불빛이 보이기는 했지만, 번화가의 문은 거의 닫힌 지 오래되었다.
순경은 어느 길목의 중간쯤에 와서 갑자기 발걸음을 늦추었다. 컴컴한 철물점 입구에, 어떤 사나이가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입에 물고 기대 서 있다가 순경이 다가가자 황급히 말했다.
"별일 없습니다, 순경 아저씨."
그는 안심시키듯이 말했다.
"그저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20년 전에 한 약속이죠.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자세히 설명해 드리지요. 20년 전에는, 여기 이 철물점이 있는 곳에 '빅 조 브래디'라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6년 전까지도 있었죠."
순경이 말을 받았다.
"식당이 그때 헐렸죠."
철물점 입구에 서 있던 사람은 성냥을 그어 시가에 불을 붙였다. 날카로운 눈초리와 창백하고 턱이 모난 얼굴의 오른쪽 눈썹 가에 작고 하얀 흉터가 성냥불에 비쳤다. 그는 큰 다이아몬드가 이상하게 박힌 넥타이핀을 끼고 있었다.
"20년 전 바로 오늘 밤에, 나와 가장 친하며,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한 지미 웰스라는 친구와 여기 '빅 조 브래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와 나는 여기 뉴욕에서 마치 한 형제처럼 자랐습니다. 그때 내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고, 지미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나는 돈을 벌ㄹ기 위해 서부로 떠나야 했습니다. 지미는 절대로 뉴욕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요. 그는 이 세상에서 살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는 줄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날 밤 우리의 처지가 어떻게 되든 또는 아무리 먼 곳에 살게 되더라도, 지금 이 시각부터 꼭 20년이 되는 때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20년이 되면, 어떻게든 운명도 개척하게 되고 돈도 벌게 되리라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그것 참 재미있군요."
순경이 말했다.
"그런데 재상봉 기간이 너무 긴 것 같은데요. 그래, 떠난 후에 소식은 들었습니까?"
"네, 오랫동안 서신 왕래가 있었지요."
상대방이 대답했다.
"그런데 1, 2년 후에 소식이 끊어졌어요. 아시다시피 서부란 꽤 큰 지역이죠. 게다가 나는 참으로 바쁘게 돌아다녔죠. 그러나 지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되고 미더운 친구이니, 살아 있다면 나를 만나러 여기에 올 것입니다. 약속을 잊어버릴 리도 없어요. 나는 약속을 지키려고 천 마일이나 달려왔어요. 그 옛 친구가 나타나면 온 보람이 있겠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뚜껑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여러 개 박힌 회중시계를 꺼냈다.
"10시 3분 전이군요."
그가 말했다.
"우리가 식당 앞에서 헤어진 게 꼭 10시였죠."
"당신은 서부에서 재미를 많이 본 모양이군요?"
순경이 물었다.
"그럼요! 지미가 내가 번 것의 절반이라도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친구는 사람은 좋지만 꾸준하기만 한 사람이죠. 나는 큰돈을 벌기 위해 날고 뛰는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만 했쬬. 뉴욕에서 사는 사람은 판에 박힌 생활을 하게 되죠. 하지만 서부에서 지내는 사람에게는 가끔 모험도 따르게 됩니다."
순경은 곤봉을 휘두르며 한두 걸음 옮겼다.
"나는 가 봐야겠습니다. 친구분은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정각까지만 기다리시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30분은 더 기다려야지요. 지미가 이 세상에 살아만 있다면 그때까지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순경은 인사를 하고, 문단속을 한 후 순찰을 계속했다.
드디어 찬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불규칙하게 불던 바람도 일정하게 불어왔다. 몇 명 안 되는 보행자들은 코트깃을 세우고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침울한 표정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친구와의 젊은 시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 마일이나 달려온 사람은 철물점 문턱에서 시가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약 29분쯤 기다리자, 긴 외투를 입고 코트 깃을 귀까지 세운 키 큰 사람ㅁ이 길 건너편에서 서둘러 건너왔다. 그는 곧바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자네 밥이지?"
그는 의심쩍은 듯이 물었다.
"자네가 지미 웰스인가?"
문에 서 있던 사람이 크게 외쳤다.
"감개무량하네!"
나중에 온 사람이 상대방의 두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틀림없이 밥이구먼! 자네가 살아만 있다면 여기서 만날 줄 알았네. 정말이지 20년이란 긴 세월일세. 여기 있던 음식점도 없어졌지.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거기서 다시 저녁 식사도 없어졌지.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거기서 다시 저녁 식사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이 친구야, 그동안 서부에서 어떻게 지냈나?"
"말도 말게.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다 이루어졌네. 지미, 자네 참 많이 변했네. 자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2, 3인치는 더 큰 것 같은데."
"스무 살이 지나서 좀 컸지."
"지미, 자네는 뉴욕에서 잘 지내나?"
"그저 그렇지. 나는 시청에 근무하고 있어. 자, 내가 잘 아는 곳으로 가서 옛이야기나 오랫동안 나누세."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서부에서 온 사나이는 성공했다는 자부심에 부풀어 자기가 지내 온 내력을 대강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외투에 푹 파묻힌 상대편 사람은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길모퉁이에 전등이 밝게 비치는 약국이 있었다. 두 사람은 밝은 불빛 속에 들어오자 서로 얼굴을 보려고 동시에 몸ㅁ을 돌렸다. 서부에서 온 사나이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는 끼고 있던 자기 팔을 풀었따.
"자네는 지미 웰스가 아니야."
그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20년이 아무리 길다고 하더라도 매부리코를 납작코로 만들 수는 없지 않소."
"그러나 20년은 착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기도 하지요."
키가 큰 사람이 말했다.
"멋쟁이 밥, 당신은 10분 전에 체포되었소. 시카고 당국은 당신이 우리 구역으로 들어 왔을지도 모르니, 당신과 면담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전문을 보내 왔소. 조용히 가려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거요. 경찰서로 가기 전에, 당신에게 전해 달라고 요청을 받은 쪽지가 여기 있소. 창가에서 읽어 보도록 하시오. 웰스 순경이 전하는 것이오."
서부에서 온 사나이는 작은 쪽지를 받아 펼쳐 들었다. 그가 쪽지를 읽기 시작할 때에는 손이 떨리지 않더니 다 읽을 때쯤에는 약간 떨렸다.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밥
나는 정시에 약속한 장소에 갔네. 그러나 자네가 시가에 불을 붙이려고 성냥을 켰을 때, 자네가 바로 시카고 당국이 수배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네. 하지만 차마 내 손으로 자네를 체포할 수가 없어서 다른 형사에게 부탁했네. (p.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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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O. Henry)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 1862년 9월 11일 ~ 1910년 6월 5일)는 미국의 작가이자 소설가로, 오 헨리(O. Henry)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90년대의 가족 사진, 왼쪽부터 아내 애솔(Athol), 딸 마거렛(Margaret), 포터 윌리엄 시드니 포터는 1862년 10월 11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그린즈버러에서 앨저넌 시드니 포터와 메리 제인 버지니아 스웨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살 무렵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가족은 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18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촌이 경영하는 약국의 조수로 들어가 1881년 약사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1882년 포터는 제임스 홀을 따라 텍사스로 이주하여 그의 아들 리처드 홀의 목장에서 일하였다. 그 곳에서 포터는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의 음악을 배웠다. 1884년 오스틴으로 이사하였다. 거기서 포터는 제도사, 은행원, 기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으며 습작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포터는 오스틴에서 극단에 들어가 기타와 만돌린을 연주하였다. 1887년 17세였던 애솔 에스테스와 결혼하였다. 1887년 리처드 홀이 지주협의회의 의장이 되자 그의 권유로 텍사스 제네럴 랜드 오피스의 제도사로 근무하였다. 1888년 아들이 태어났으나 태어나자 마자 사망하였다. 1889년 딸 마가릿 워스 포터가 태어났다. 리차드 홀이 1890년 낙선하자 포터는 은행원, 기자등으로 일하였으며 첫 작품 《구르는 돌》(The Rolling Stones)을 발표하였으나 1500부가 팔리는데 그쳤다.
포터 가족은 1895년 휴스턴으로 이사하였다. 포터는 우체국의 고정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스틴에서 재직하였던 은행에서 포터가 재직 중 계산 실수를 범했다는 이유로 고소하여 구금되었다. 포터는 장인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장인의 집에 의탁하였다. 첫 재판은 1896년 7월 7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포터는 처음에는 뉴올리언스로 이후 온두라스로 도피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바나나 공화국을 빗댄 《양배추와 왕》을 썼다.
포터는 1897년 아내 애솔이 결핵으로 죽어간다는 전갈을 받고 오스틴으로 돌아왔다. 애솔은 1897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포터는 체포되어 1898년 2월 횡령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5월 25일 오하이오 교도소에 수번 30664번으로 수감되었다. 포터는 약사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복역 중에 야간 약국 담당으로 일하였다. 복역 중에 포터는 여러 필명으로 단편 소설을 출간하였다.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휘파람 부는 딕의 크리스마스 스타킹》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그의 이름 역시 오 헨리로 널리 알려졌다.
1901년 출감한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로 이사한 장인을 찾아가 11살이 된 딸 마거릿을 만났다. 장인은 마거릿에게 포터가 사업 때문에 멀리 여행갔다고 말하여 두고 있었다.
1902년 《뉴욕 월드 썬데이 매거진》이 그의 글을 수록하길 하자 포터는 뉴욕으로 이사하였다. 포터는 이 잡지에 381편의 단편의 실었다. 1907년 포터는 세라 린지 콜먼과 재혼하였다.
1908년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글쓰기를 중단하였다. 1909년에 사라가 떠나간 뒤 더욱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10년 6월 5일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망 후 뉴욕 시에 의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에 묻혔다. 1927년 그의 딸 마가렛 역시 사망하여 아버지의 옆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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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단편선 - 오 헨리 (김희용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마지막 잎새 - 오 헨리 (최인자 옮김, 펭귄클래식)
마지막 잎새 - 오 헨리 (오정환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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