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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이방인 -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by handaikhan 2023. 2. 5.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 이방인 (1942년)

 

<제1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은 알제에서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랭고에 있다. 2시에 버스를 타면, 오후 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밤샘을 할 수 있고, 내일 저녁에는 돌아올 수 있으리라. 나는 사장에게 이틀 동안의 휴가를 청했는데 그는 이유가 이유니만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그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사장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그런 소리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변명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가 나에게 조의를 표해 주는 쪽이 오히려 마땅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모레, 내가 상장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조문 인사를 할 것이다. 지금은 어쩐지 엄마가 죽지 않은 것이나 별다름이 없는 듯한 상태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확정적인 사실이 되어 만사가 다 공인된 격식을 갖추게 될 것이다. (p.9-1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창비)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나의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엄마를 잊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했다. 일단 전단지 초안을 짜보기로 했다. 옛날 방식이다. 가족을 잃어버렸는데, 그것도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남은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몇가지 되지 않았다. 실종신고를 내는 것, 주변을 뒤지는 것, 아무나 붙잡고 이런 사람 보았느냐 묻는 것,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남동생이 인터넷에 엄마를 잃어버리게 된 이유와 잃어버린 장소와 엄마의 사진을 올리고 비슷한 분을 보게 되면 연락해달라고 게시하는 것, 엄마가 갈 만한 곳이라도 찾아다니고 싶었으나 이 도시에서 엄마 혼자 갈 수 있는 곳은 없다는 ㄴ것을 너는 알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 문안 작성은 내가 해라. 오빠가 너를 지명했다. 글을 쓰는 사람. 너는 해서는 안될 일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귀밑이 붉어졌다. 과연 네가 구사하는 어느 문장이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데 도움이 될까.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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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은 서류를 뒤적여 보고 나서 말했다. "뫼르소 부인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에 이곳에 들어오셨습니다. 의지할 사람이라곤 당신밖에 없는 처지였더군요." 나는 그가 나를 나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정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변명할 건 없어요. 나도 당신 어머니의 서류를 읽어 보았는데, 어머님을 부양할 수가 없는 처지였더군요. 어머니한테는 돌봐 줄 만한 사람이 따로 있어야 했는데, 당신의 월급은 얼마 안 됐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어머니는 여기 계신 게 더 행복하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원장님."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머니께는 같은 연배의 친구들이 계셨지요. 그들과 함께 지나간 옛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젊으니까 당신과 함께 살았으면 아무래도 적적하셨을 겁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집에 있었을 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보기만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양로원으로 들어가고 난 처음 몇칠 동안은 자주 울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습관 탓이었다. 몇 달 후에는, 양로원에서 데리고 나오겠다고 했더라도 역시 습관 때문에 울었을 것이다. 마지막 해에 내가 거의 양로원에 가지 않은 데는 그러한 이유도 약간 있었다. 게다가 그러자면 또 일요일을 빼앗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표를 사 가지고 두 시간 동안이나 차를 타야 하는 수고는 그만두고라도 말이다. (p.11)

 

그때 문지기가 뒤따라 들어왔다. 뛰어온 모양이었다. 그는 좀 더듬거리며 말했다. "입관을 했습니다만, 보실 수 있도록 나사못을 뽑아 드려야죠." 그러면서 관으로 가까이 가려기에 나는 그를 제지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안 보시렵니까?" 내가 대답했다. "네," 그는 말을 뚝 끊었고, 나는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랬구나 싶어서 난처해졌다. 조금 후 그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그러나 나무라는 어조는 아니었고, 그저 물어나 보자는 듯했다. 나는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흰 수염을 어루만져 비꼬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하긴 그러실 겁니다." 푸르고 맑은 그의 눈은 아름다웠으며 얼굴빛은 조금 붉었다. 그는 나에게 의자를 권하고 자기도 내 뒤에 조금 떨어져서 앉았다. (p.12-13)

 

문지기는 조그만 영안실에서, 그가 극빈자로 양로원에 들어 온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이 아직 건강하다고 여기므로 그 문지기 자리를 자원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결국 그도 역시 재원자의 한 사람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가 재원자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 '저 사람들', 또 어쩌다가는 '늙은이들'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재원자들 중에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물론 그건 다른 문제였다. 그는 문지기인 만큼, 어느 정도 그들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었다. (p.14-15)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인지 방 안의 흰빛이 눈부셔 보였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고, 물체 하나하나, 모서리 하나하나, 모든 곡선들이 눈이 아플 정도로 뚜렷이 드러나 보였다. 엄마의 양로원 친구들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모두 한 여남은 명 되었는데, 아무 말 없이 그 분부신 빛 속으로 살며시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은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으며 앉았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들을 잣헤히 보았는데 그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의 사소한 모습 하나에 이르기까지 나의 눈에 듸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도 말이 없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자들은 거의 모두가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를 끈으로 졸라매고 있어서, 그들의 불룩 나온 배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늙은 여자들의 배가 얼마나 나올 수 있는 것인가를 눈여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몹시 여위었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은, 눈은 보이지도 않고 다만 온통 주름투성인 얼굴 한가운데에 광채 없는 빛만이 보여서였다. 그들이 앉았을 때, 거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이가 빠져 버린 입속으로 입술이 온통 다 말려 들어간 채 머리를 어색하게 수그렸는데, 그것이 나에 대한 인사인지 혹은 그들의 버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모두 문지기를 둘러싸고 나와 마주 앉아서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는 것을 내가 알아차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한순간,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앉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상을 받았다. (p.16-17)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여자의 한숨과 흐느낌은 차츰 간격이 뜸해졌다. 그녀는 몹시 훌쩍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울음을 그쳤다. 졸음은 더 이상 오지 않았으나, 나는 고단했고 허리가 아팠다. 이제 내게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이 모든 사람들의 침묵이었다. 다만 때때로 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중 어떤 늙은이들이 볼때기 안쪽을 빨아서 그처럼 야릇한 혀 차는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자신은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제각기 깊은 생각에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 앞에 누인 그 시신이 그들의 눈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릇된 인상이었던 것 같다. (p.17-18)

 

하늘에는 벌써 햇빛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땅 위로 무겁게 내리쬐기 시작했고, 더위는 급속히 더해 갔다.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길을 떠나기 전에 우리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기다렸다. 검은 상복을 입고 있어서 나는 몹시 더웠다. 모자를 스고 있던 노인은 다시 모자를 벗었다. 고개를 조금 돌리고 그를 보고 있으려니까 원장이 내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원장은 나에게, 어머니와 페레스 씨는 저녁이면 흔히 간호사를 데리고서 마을까지 산책을 하곤 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주위의 벌판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하늘 닿은 언덕까지 늘어선 실편백나무들의 윤곽이며 적갈색과 초록색의 그 대지, 드문드문 흩어져 있지만 그린 듯 뚜렷한 그 집들을 통해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고장에서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과도 같았을 것이다. 오늘은, 풍경을 전율케 하면서 천지에 넘쳐 나는 햇빛 때문에 이 고장은 비인간적이고도 사람의 기를 꺾어 놓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p.22)

 

그때 장의사 인부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데 나는 잘 듣지 못했다. 동시에 그 인부는 오른손으로 모자 차양을 들어 올리고 왼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뭐라고요?" 그는 하늘을 가리키며 되풀이했다. "무던히 내리쬐는 군요." 나는 "네"하고 말했다. 조금 뒤에 그는 물었다. "저분이 댁의 어머닌가요?" 나는 또 "네"하고 말했다. "연세가 많으셨습니까?" 나는 정확한 나이를 몰라서 "그렇죠, 뭐"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말이 없었다. (p.23)

 

내가 보기에 행렬이 좀 더 빨리 움직이는 것 같았다. 주위에는 한결같이 햇빛이 넘쳐서 눈부시게 빛나는 벌판이 보일 뿐,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땐가 우리는 최근에 새로 포장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뜨거운 햇텹을 받아 아스팔트가 녹아서 갈라 터져 있었다. 발이 그 속에 푹푹 빠져들어 갔고, 콜타르가 벌어지며 그 번쩍거리는 속살이 드러났다. 영구차 위로 보이는 마부의 삶아서 굳힌 가죽 모자는 마치 바로 그 검은 진흙 반죽으로 이겨서 만든 것만 같았다. 푸르고 흰 하늘과 갈라진 아스팔트의 끈적거리는 검은색, 걸친 상복들의 흐릿한 검은색, 니스 칠한 영구차의 검은색 등 단조롭기만 한 색깔들 가운데서 나는 정신이 좀 어리둥절해졌다. 햇빛, 가죽 냄새, 영구차의 말똥 냄새, 니스 칠 냄새, 향냄새, 잠을  자지 못한 하룻밤의 피로, 그러한 모든 것이 나의 눈과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뒤돌아보았다. 구름처럼 드리운 무더운 공기 속으로 페레스 영감이 까마득하게 멀리 나타나 보이더니 이윽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찾아보았더니 그가 길을 벗어나 벌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나는, 길이 내 앞 저쪽에 가서 구부러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페레스는 그 지방을 잘 아니까 우리들을 따라잡으려고 지름길로 접어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길이 구부러진 곳에 이르자, 그는 우리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는 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벌판을 가로질러 갔고, 그러기를 여러 차례나 되풀이했다. 나는 관자놀이에서 피가 뛰는 것을 느꼈다.

그다음에는 모든 것이 어찌나 신속하고 확실하고 또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는지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마을 어귀에서 담당 간호사가 나에게 말을 한 것이었다.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매끄럽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가면 더위를 먹을 염려가 있어요. 하지만 너무 빨리 가면 땀이 나서 성당 안에 들어가면 으슬으슬 춥답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정말 빠져나갈 길이 없는 것이었다. 그 밖에 그날의 몇 가지 광경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가령 마을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들을 따라 잡았을 때 페레스의 그 얼굴. 신경질과 힘겨움의 굵은 눈물방울이 그의 뺨 위에 번득이고 있었따. 그러나 주름살 때문에 더 이상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눈물방울은 그 일그러진 얼굴 위에 퍼졌다가 한데 모였다가 하며 니스 칠을 해 놓은 듯 번들거렸다.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것은 성당, 보도 위에 서 있던 마을 사람들, 묘지 무덤들 위의 붉은 제라늄 꽃들, 페레스이 기절, 엄마의 관 위로 굴러떨어지던 핏빛 같은 흙, 그 속에 섞이던 나무뿌리의 허연 살, 또 사람들, 목소리들, 마을, 어떤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 끊임없이 툴툴거리며 도는 엔진 소리, 그리고 마침내 버스가 알제의 빛의 둥지속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리하여 이제는 드러누워 열두 시간 동안 실컷 잠잘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의 나의 기쁨, 그러한 것들이다. (p.23-25)

 

잠에서 깨어나자 나는, 이틀 동안의 휴가를 청했을 때 왜 사장이 못마땅한 기색을 보였는지 그 까닭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토요일인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여태껏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셈인데,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사장은 자연히 내가 그렇게 되면 일요일까지 합쳐서 나흘 동안 쉬게 될 것을 생각했을 것이므로, 그것이 그의 마음에 탐탁하게 여겨졌을 리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엄마의 장레식을 오늘 치르지 않고 어제 치른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도 다른 한편으로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나는 어차피 쉬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장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바도 아니다. (p.26)

 

내가 검은 넥타이를 맨 것을 보고 마리는 놀란 표정이 되면서, 상을 당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죽었다고 대답했다. 언제 그런 일을 겪었는지 알고 싶어 하기에, 나는 "어제."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흠칫 뒤로 물러섰으나, 아무런 나무람도 하지 않았따.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런 소리를 사장에게도 한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말을 해 본댔자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게 마련이니까.

저녁때가 되자 마리는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다. (p.27-28)

 

창가에 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우려 했으나, 공기가 서늘해서 좀 추었다. 나는 창문을 닫았고, 방 안으로 돌아오다가 거울 속에 알코올램프와 빵 조각이 나란히 놓여 있는 테이블 한끝이 비친 것을 보았다.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레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시지프 신화 - 카뮈 (김화영 옮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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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회사에서 일을 많이 했다. 사장은 친젏가ㅔ 대해 주었다. 그는 나에게 너무 피곤하지 않은가 물었고, 그 역시 엄마의 나이를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틀리게 대답하지 않으려고, "한 예순쯤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으나, 사장은 안심이라는 듯한, 그리고 그건 이미 끝이 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눈치였다. (p.33)

 

컴컴한 층계를 올라가다가, 나와 같은 층의 이웃에 사는 살라마노 영감과 부딪쳤다. 영감은 개를 데리고 있었다. 팔 년 전부터 영감과 개는 늘 함께 있었다. 그 스패니얼 개는 내가 보기에 습진인 듯한 피부병 때문에 털이 거의 다 빠지고 온몸이 반점과 갈색의 딱지투성이가 되어 있다. 그 개와 단둘이 조그만 방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나머지, 살라마노 영감은 마침내 개의 모습을 닮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는 불그스름한 딱지가 있고, 털도 누렇고 드문드문하다. 개도 그 주인에게서 코를 앞으로 내밀고 목을 벋치는 식의 구부정한 자세를 배웠다. 그들은 아무래도 동일한 족속 같은데,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11시와 오후 6시에 영감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팔 년 전부터 그들은 한 번도 산책 코스를 바꾼 적이 없다. 언제나 리용 거리에서 그들을 볼 수 있는데, 개가 늙은이를 끌고 가다가는 기어코 살라마노 영감의 발부리가 무엇에 걸려 버리고 만다. 그러면 영감은 개를 때리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이다. 개는 무서워서 설설 기며 끌려간다. 이번에는 영감이 개를 끌고 갈 차례다. 개가 그것을 잊어버리고 다시금 앞서서 주인을 끌어당기면 또 매를 맞고 욕을 먹는다. 그때는 둘이 다 멈춰 서서, 개는 공포에 떨며, 주인은 미움에 떨며 서로 노려본다. 매일처럼 그 모양이다. 개가 오줌을 싸고 싶어 해도, 영감은 그럴 시간을 주지 않고 끌어당기니까, 스패니얼 개는 오줌 방울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따라간다. 어쩌다가 개가 방 안에서 오줌을 싸면 또 매를 맞는다. 그렇게 지낸 것이 팔 년째다. 셀레스트는 늘 '가엾다'고 말하지만 사실인즉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층계에서 그를 만났을 때, 살라마노는 개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놈! 망할 자식!"하고 그는 야단을 치고, 개는 끙끙거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내가 인사를 했으나, 영감은 그냥 욕지거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영감은 다만, "빌어먹을 놈! 망할 자식! 하고 말할 뿐이었다. 영감은 그 개 위로 몸을 굽히고 있었는데 목걸이 속의 무엇인가를 고쳐 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좀 더 높여서 말해 보았다. 그제야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북받치는 역정을 억지로 삼켜 버리듯이, "이놈이 늘 버티고 있어서요."하고 대꾸했다. 그러고는 개를 잡아끌고 가 버렸다. 개는 네 발로 버틴 채 끌려가면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p.35-36)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불안의 책 - 페르난두 페소아 (오진영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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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파자마를 입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웃었을 때, 나는 또 정욕을 느꼈다.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p.44)

 

조금 뒤에 사장이 나를 불렀다.전화는 되도록 삼가고 좀 더 열심히 일을 하라고 말하겠거니 생각하자, 돌연 언짢은 생각이 들었따. 그런데 그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아직 막연하지만 어떤 계획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만 그 문제에 관해 나의 의견을 들어 볼 생각이었다. 파리에다가 출장소를 설치하고 현지에서 직접 큰 회사들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데, 그리로 갈 생각이 있는지 나의 의향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파리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고, 일 년에 얼마 동안은 여행알 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자넨 젊으니까, 그런 생활이 자네 마음에 들 것 같은데."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가 불만스러운 눈치를 보이며 하는 말이, 난느 대답을 한다는 것이 언제나 딴전이고 나에게는 야심이 없는데 그건 사업하는 데는 아주 좋지 못한 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려고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궈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엔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p.51)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느,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나는 그저 승낙을 했을 뿐이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아니야"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을 했을 건긴가, 다만 그것만이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생각해 보는 듯했으나,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노라니까, 마리는 웃으면서 내 팔을 붙들고 나와 결혼을 하자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장의 제안을 이야기해 주니까, 마리는 파리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내가 잠시 파리에서 살아 본 일이 있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어떻더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해 주었다. "더러워, 비둘기들과 컴컴한 안뜰들이 있어. 사람들은 모두 피부가 허옇고."

그러고 나서 우리들은 대로를 택해 시내를 거닐었따. 여자들이 아름다웠다. 나는 마리에게 그 점을 눈여겨보았느냐고 물었다. 마리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잠시 동안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따. 그래도 나는 그녀가 나와 함께 있어 주었으면 싶어서,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마리는 그러고 싶지만 볼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나의 집 근처에 이르렀기에, 나는 잘 가라고 인사말을 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내가 무슨 볼일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하고 말했다. 그것을 알고 싶긴 하지만 물어볼 생각을 미처 못 했을 뿐이었는데, 마리는 그것을 나무라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나의 어색한 표정을 보고 다시 웃더니, 불쑥 온몸으로 달려들어 입술을 내게로 내밀었다. (p.52-53)

 

그때 내가 하품을 하자 노인은 가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좀 더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개가 그렇게 된 것을 딱하게 생각한다고 했더니, 그는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그 개를 몹시 귀여워했다고 말했다.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가엾은 자당님'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죽은 뒤 필시 내가 매우 상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말했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빠른 어조로 어색한 낯을 보이며, 어머니를 양로원에 넣었다고 동네에서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며, 내가 엄마를 퍽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노라고 말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까닭을 알 수 없지만, 나는 엄마 때문에 내가 악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나에게 엄마를 돌볼 사람을 둘 만한 돈이 없었으므로 양로원에 넣는 것이 마땅한 처사로 생각되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게다가 엄마는 오래전부터 내게 할 말도 없어서 외롭고 적절해했는걸요"하고 덧붙였더니 그는 "그럼요, 양로원에선 친구라도 생기지요."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 가서 자려는 것이었다. 이제 그의 생활이 바뀌게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와 알게 된 이래 처음으로 그는 슬그머니 나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내 손에 그의 피부의 비늘같이 거슬거슬한 부분이 느껴졌다. 그는 약간 웃어 보이고 방을 나서려다가 말했다. "오늘 밤은 제발 개들이 짖지 말았으면 좋으련만. 내 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p.55-56)

 

우리는 오랫동안 해변을 걸었다. 이제 태양은 찍어 누르는 듯 세차게 내리쪼였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레몽이 자신이 가는 곳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닷가 끝가지 가서, 우리는 마침내 커다란 바위 뒤에서 바다로 향해 모래밭으로 흐르고 있는 조그만 샘 가에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그 아랍인 둘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기름기가 밴 푸른 작업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마음은 거의 가라앉은 듯 아주 느긋한 빛이었다. 우리가 나타나도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레몽을 찌른 녀석도 아무 말 없이 레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한 녀석은 작은 갈대 피리를 불고 있었는데, 곁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그 악기로 낼 수 있는 세 가지 소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거기에는 다만 태양과 그 침묵, 그리고 졸졸 흐르는 샘물 소리와 세 가지 음정의 피리 소리뿐이었다. 이윽고 레몽이 호주머니의 권총에 손을 댔으나 상대편은 움직이지 않았고 둘은 여전히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피리를 불고 있는 녀석의 발가락들이 사이가 몹시 벌ㄹ어져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그러나 레몽은 상대편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해치워 버릴까?"하고 물었다. 안 된다고 하면 그는 제풀에 화를 내어 기어코 쏘고야 말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저 녀석은 아직 아무 말도 안했어. 이대로 쏘아 버린다는 건 비겁해."하고 말해 주었다. 침묵과 무더운 열기 속에서, 여전히 물과 피리의 호젓한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레몽이, "그럼, 저 녀석에게 욕을 해 줘야겠군. 말대답을 하면 쏘아 버려야지."하고 말하기에 나는, "그래. 하지만 녀석이 단도를 뽑지 않으면 쏠 수 없어."하고 대답했다. 레몽은 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상대편은 여전히 피리를 불고 있었고, 둘 다 레몽의 일거일동을 살피고 있었다. "쏘면 안 돼. 사나이답게 맞상대를 해야지. 그리고 그 권총은 이리 줘. 만약에 다른 녀석이 뛰어들든지 저 녀석이 단도를 뽑든지 하면 내가 쏘아 버릴 테니까."

레몽이 권총을 나에게 주었을 때, 그 위로 햇빛이 번쩍 반사되며 미끄러졌다. 그러나 우리들은 마치 모든 것이 우리들의 주위를 둘러막아 가두고 있듯이,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우리들은 눈길을 내리뜨지도 않고 서로 마주 노려보고 있었으며,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바다와 모래와 태양, 그리고 피리 소리와 물소리가 자아내는 이중의 침묵 가운데 정지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권총을 쏠 수도 있고 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아랍인들이 뒷걸음질을 하며 바위 뒤로 스며들듯이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레몽과 나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레몽은 기분이 좀 풀린 듯, 집으로 돌아갈 버스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와 오두막까지 함께 갔고 레몽이 나무 층계를 올라가는 동안 첫 계단 앞에 서 있었다. 햇볕 탓에 머릿속이 꽝꽝 울리는 데다가, 그 나무 층계를 걸어 올라가서 또다시 여자들과 상대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맥이 풀렸던 것이다. 그러나 더위가 어찌나 지독한지 눈을 멀게 할 듯 하늘에서 쏟아붓는 햇볕의 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그곳에 그냥 머물러 있거나 가 버리거나 결국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에 나는 다시 바닷가 쪽으로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다름없이 시뻘건 폭발은 그대로였다. 모래 위에서 바다는 잔물결들의 급하고 가쁜 숨결을 다하여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위께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햇볕에 쬐어 이마가 부풀ㄹ어 오르는 것 같았다. 더위 전체가 내 위로 내리눌러 대면서 나의 걸음을 막았다. 그리하여 얼굴 위에 엄청나게 무더운 바람이 와 닿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부르쥐었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부어 주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견뎌 이기려고 전력을 다해 몸을 버티는 것이었다. 모래나 흰 조개껍질이나 유리 조각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칼날처럼 번뜩일 때마다 양쪽 턱뼈가 움찔하곤 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햇빛과 바다의 먼지 같은 수증기 때문에 눈부신 후광에 둘러싸인 거무스름한 바위 덩어리가 멀리 조그맣게 바라다보였다. 나는 바위 뒤의 서늘한 샘을 생각했다. 나는 졸졸 흐르는 그 샘물의 속삭임을 되찾아가고 싶었고, 태양과 힘겨운 노력과 여자의 울음소리를 피하고 싶었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그늘과 그 그늘 밑의 휴식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보다 더 가까이 갔을 때, 나는 레몽과 상대했던 녀석이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혼자였다. 번듯이 드러누워 있었는데, 두 손을 목 밑에 괴고, 이마만 바위 그늘 속에 넣고 온놈에 햇볕을 받고 있었다. 푸른 작업복이 더위 속에서 김을 내밀고 있었다. 나로서는 좀 의외였다. 내게 있어서 그 사건은 이미 끝난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리로 갔던 것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조금 몸을 쳐들어 올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물론 나도 웃옷 속에 들어 있던 레몽의 권총을 그러쥐었다. 그는 다시금 몸을 젖혀 누워 버렸으나,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퍽 멀찍이, 한 십여 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절반쯤 감은 그의 눈꺼풀 사이로 이따금 그의 시선이 새어 나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대개는 그의 모습이, 타는 듯한 대기 속에서 나의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파도 소리는 정오 때보다도 더욱 나른하고 더욱 가라앉았다. 글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모래 위에 다름 없는 태양, 다름없는 빛이 그대로 여기에도 연장되고 있었다. 벌써 두 시간째 낮은 걸음을 멈추고 있었고, 벌써 두 시간째 낮은 끓는 금속 같은 대양 속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조그만 증기선이 지나갔다. 나는 한쪽 눈 가장자리에서 검은 얼룩같이 보이는 그 증기선을 분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랍인으로부터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햇볕에 진동하는 해변 전체가 내 뒤에서 죄어들고 있었다. 나는 샘으로 향해 몇 걸음 나섰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아직 내게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얼굴 위에 드리운 그늘 탓이었던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은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으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는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맻졌던 땀이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주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청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p.66-70)

 

<제2부>

그는 침대 위에 앉은 다음, 나의 사생활에 관해 여러 가지로 정보를 수집했노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최근에 양로원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어 마랭고에 가서 조사를 해 보았다. 그 결과 엄마의 장례식 날 '내가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조사원들이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사실 당신에게 이런 걸 묻는 것은 거북한 일이지만,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거기에 답변할 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검사 측에는 중대한 논거가 될 것입니다."하고 변호사는 말했다. 그는 내가 그에게 협력해 주기를 원했다. 그날 마음이 아팠냐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 질문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만약에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만 할 입장이었다면 나는 매우 거북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자문해 보는 습관을 좀 잃어버려서,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니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그러자 변화사는 내 말을 가로막았는데, 매우 흥분한 듯이 보였다. 그는, 그러한 말은 법정에서나 예심판사의 방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며 나를 다그쳤다. 그러나 나는, 원래 육체적 욕구에 밀려 감정은 뒷전이 되는 그런 천성이라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졸렸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변호사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빈다." 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는 내가 좀 밉살스럽다는 듯이 이상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양로원 원장과 직원들이 증인으로 나와서 심문을 받을 텐데, '그러면 나에게 아주 골치 아픈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거의 쌀쌀맞다 싶은 어조로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런 이야기는 내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지적했으나 그는 다만, 내가 재판부와 상대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 것 같다고만 대답했다.

그는 화가 난 얼굴로 나가 버렸다. 나는 그를 좀 더 붙잡아두고서, 그의 호감을 사고 싶다는 것, 그런데 그것은 나를 잘 변호 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이를테면 저절로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그에게 딱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은 결국 별루 소용이 없는 일이었고 또 귀찮기도 해서 단념하고 말았다. (p.74-76)

 

나는 그처럼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것이 지겨웠다. 그리고 나는 여태껏 그렇게 말을 많이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를 도와주고 싶다, 내게 흥미를 느낀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얻어 나를 위해 뭔가 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먼저 그는 나에게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로, 내가 엄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네,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사랑했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 순간 그때까지 규칮적으로 타이프를 치고 있던 서기가 키를 잘못 짚은 것 같았다. 당황하면서 다시 뒤로 물러 고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말이다. 여전히 확연한 논리도 없이, 판사가 이번에 내게 권총 다섯 발을 연달아서 쏘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해 보고 나서, 처음에 한 발 쏘고 몇 초 후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첫 발과 둘째 발 사이에 왜 기다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닷히 한 번 붉은 바닷가 모래밭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고 이마 위에 타는 듯 뜨거운 햇살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침묵이 계속 되는 동안 판사는 흥분한 눈치였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머리털을 헝클면서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괸 다음, 야릇한 표정으로 나에게 약간 몸을 굽혔다. "왜, 왜 당신은 땅에 쓰러진 시체에다 대고 쏘았느냐고요?" 그 물음에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판ㅅ하는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목소리까지 약간 변해서는, "왜 그랬습니까? 그 까닭을 말해 줘야죠. 왜 그랬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의 논리를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첫째로 몹시 더운 데다 그의 사무실에는 큼직한 파리들이 있어서 그것들이 얼굴에 달라붙었기 때문이고, 또 나는 그의 태도에 좀 겁이 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판사가 하는 짓이 우스워 보였다. 왜냐하면, 뭐니 뭐니 해도 죄를 지은 사람은 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떠들어 댔다. 내가 대강 알아들은 바에 따르면, 그가 생각할 때 나의 고백에 오직 한 가지만이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즉, 둘째 발을 쏘기 전에 기다렸다는 사실 말이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다 좋은데, 오직 그 점이 그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잘 못이다. 그 마지막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그에게 말할까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 다시 한 번 벌떡 일어서더니 나더러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으면서 훈걔를 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분연히 주정앉았다. 그럴 수는 없다고 하며 누구나, 비록 하느님을 외면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을 믿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신념이었고, 만약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해야 한다면 그의 삶은 무의미해지고 말리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의 삶이 무의미해지기를 바랍니까? 하고 그는 외쳤다. 내가 볼때 그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벌써 책상 너머로 그리스도 십자가 상을 나의 눈앞에다 내밀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기독교 신자야. 나는 이분께 네 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어. 어째서 너는 그리스도께서 너를 위해 고통 받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그가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제는 진절머리가 났다. 더위는 점점 더 심해졌다. 별로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않은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면 내가 늘 하는 것처럼, 나는 그의 말을 수긍하는 체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는 의기양양해서, "그것 봐, 그것 보라고. 너도 믿고 있잖아? 하느님께 너 자신을 맡기려는 거잖아?" 하고 말했다. 물로는 나는 다시 한 번 아니라고 했다. 그는 다시금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잠시 그는 아무 말이 없었으나, 그 동안에도 대화를 뒤쫓으며 멈추지 않고 있던 타이프가 마지막 이야기를 계속해서 받아 치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약간 슬픈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로보고 나서, "당신처럼 고집 센 사람은 처음 봅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내 앞으로 온 죄인들은 이 고외의 형상을 보고는 모두 울었어요." 나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죄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은 나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그때 판사가 일어섰다. 심문ㄴ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는 여전히 좀 피곤한 표정으로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느냐고만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을 하고 나서,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날의 일은 그것으로 그치고 더 진전되지 못했다. (p.77-80)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다만 마리가 처음이자 단 한 번뿐인 면회를 온 다음부터였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그녀가 나의 아내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고, 그 편지에서 마리는 말하고 있었다), 바로 그날부터, 나는 감방이 내 집이고 나의 생활은 그 속에 한정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p.82)

 

마리가 편지를 보낸 것은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었다. 내가 절대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어쨌든 무엇이건 과장해서 말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에게는 더 쉬운 일이었다. 처음 형무소에 수감되어서 나에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내가 자유로운 사람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령 바닷가에 가 있고 싶고 바다를 향해 내려가고 싶은 욕망이 솟곤 하는 따위 말이다. 발바닥에 부딪히는 첫 물결, 물속에 몸을 담그는 촉감,, 거기서 느끼는 해방감, 그런 것들을 상상할 때면, 갑자기 나는 감옥의 벽이 그 얼마나 답답한가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된 것은 몇 달 동안이었다. 그다음에는 죄수로서의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매일 안뜰에서 하는 산책이나 변호사의 방문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이럭저럭 잘 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만약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가 살게 되어 머리 위 하늘의 표면을 바라보는 것밖에 달리 소일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해도, 차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지나가는 새들이나 마주치는 구름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마치 여기서 변호사의 야릇한 넥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듯이, 또 저 바깥세상에서 마리의 육체를 껴안을 것을 기다리며 토요일까지 참고 지내듯이,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엄마의 생각이었는데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p.86-87)

 

어느 날 간수로부터 내가 들어 온 지 다섯 달이 지났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로서는 언제나 같은 날이 내 감방으로 밀려오는 것이었고 나는 언제나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간수가 가 버린 뒤에 나는 양철 밥그릇에 비친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 모습은 내가 그것을 보고 아무리 웃으려고 해도 여전히 정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내 앞에서 흔들어 보았다. 나는 빙그레 웃었으나, 비친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나에게 있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형무소의 모든 층 여기저기로부터 저녁의 소리들이 침묵의 행렬을 지어 올라오는 그러한 시간이었다.나는 천장에 뚫린 창문으로 다가가서, 마지막 빛 속에 다시 한 번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으나, 그야 놀라울 게 없었다. 그때 나 역시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니까.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여러 달 이래 처음으로 나는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나는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내 귀에 울리고 있었던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동안 줄곧 내가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정말 빠져나갈 길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형무소에서 맞는 저녁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가 없다. (p.90-92)

 

나는 의자에 앉았고, 간수들도 나의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내 앞에 나란히 열을 지은 얼굴들이 눈에 뜨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배심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얼굴들을 구별 짓고 있던 특징을 나는 말할 수가 없다. 내가 받은 인상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내 눈앞에 전차 좌석이 하나 있고, 거기에 앉아 잇는 그 이름 모를 승객들이 모두 다 새로 오르는 승객을 훑어보면서 웃음거리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 배심원이 찾고 있던 것은 웃음거리가 아니라 범죄였으니까. 그러나 그 차이는 그리 큰 것이 아니고, 어쨌든 그것이 나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었따. (p.94)

 

나는 또 그 닫힌 방 안에 들어찬 그 모든 사람들 때문에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재판정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으나, 어느 얼굴 하나 분간할 수 없었다. 처음에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복닥거리며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보통 때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러한 법석의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많이도 모였군!" 하고 내가 간수에게 말하자, 그는 이게 다 ㅅ힌문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배심원석 아래쪽 테이블에 자리 잡은 한 패를 가리켰다."저기들 와 있소." 하고 그는 말했다. "누구 말이죠?" 하고 내가 물으니까, "신문기자들 말이야/ 하고 그는 다시 말했다. (p.95)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것으로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한 것으로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p.107)

 

법정은 폐정되었다. 법원에서 나와 차를 타러 가면서, 나는 매우 짧은 한순간 여름 저녁의 냄새와 빛을 느꼈다. 어두컴컴한 호송차 속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던 한 도시, 그리고 이따금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던 어떤 시각의 귀에 익은 그 모든 소리들을, 마치 자신의 피로한 마음속으로부터 찾아내듯이 하나씩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이미 고즈넉하게 가랁은 대기 속에서 들려오는 신문팔이들의 외치는 소리, 작은 공원 안의 마지막 새소리, 샌드위치 장수의 부르짖음, 시내 고지대의 급커브 길에서 울리는 전차의 마찰음, 그리고 항구 위로 밤이 기울기 전 하늘에서 반향 되는 어렴풋한 소리, 그러한 모든 것이 나에게는 소경이 더듬어 가는 행로와도 같은 것이 되어 주었다. 그것은 형무소로 들어오기 전에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던 그 행로였다. 그렇다. 그것은 이미 오랜 옛날 내가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던 그런 시각이었다. 그러한 때면 나늘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언제나 가볍고 꿈도 없는 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인가 달라져 버린 것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이제 내가 다시 대면한 것은 바로 나의 감방이니까 말이다. 마치 여름 하늘 속에 그려진 낯익은 기들이 죄 없는 수면으로 인도해 갈 수도 있고 감옥으로 인도해 갈 수도 있다는 듯이. (p.108-109)

 

피고석에 앉아서일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 있는 일이다.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 변론이 오가는 동안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많이 했따. 아마 내 범죄에 대해서보다도 나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연 양쪽의 변론은 큰 차이가 있었던가? 변호사는 두 팔을 쳐들어 올리고 유죄를 인정하되 변명을 붙였다. 검사는 양손을 앞으로 뻗치며 유조ㅚ를 고발하되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딘가 좀 걸리는 일이 하나 있었다. 조심을 하기는 하면서도 때로는 나도 한마디 참견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변호사는, "가만있어요, 그래야 일이 잘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를 빼놓은 채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따. 나는 참여도 시키지 않고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라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내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 보면, 할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는 데서 맛보는 흥미는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검사의 변론이 나에게는 곧 따분하게 느껴졌다. 나의 관심을 끌거나 흥미를 일으킨 것은 다만 단편적인 말들, 몸짓들, 혹은 전체와는 동떨어진 한 토막의 장광설, 그러한 것들뿐이었다. (p.110-111)

 

내가 옳게 이해한 것이라면, 검사 측 생각의 요점은 내가 범죄를 사전에 계획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실제로 그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나는 양면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명백한 사실에 비추어서, 둘째로는 이 범죄적 영혼의 심리 상태가 제공하는 어두컴컴한 조명 속에서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검사는 엄마가 죽은 뒤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요약했다. 내가 냉담했다는 것, 엄마의 나이를 몰랐다는 것, 이튿날 여자와 해수욕을 하러 갔다는 것, 영화 구경, 페르낭델, 그리고 끝으로 마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지적했었다. 그때 나는 검사의 말을 이해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그가 '그의 정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마리였을 따름이다. 그리고 검사는 레몽의 이야기를 했다. 사건을 보는 그의 방식은 나무랄 데 없을 만큼 명쾌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는 그럴듯했다. 나는 레몽과 합의하에, 그의 정부를 유인해 '품행이 수상한' 사나이의 악랄한 손아귀에 넘기려고 편지를 썼다. 바닷가에서는 내가 레몽의 상대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레몽이 다쳤던 것이다. 나는 레몽에게서 권총을 달래서, 그것을 사용할 생각으로 혼자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계획대로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이다. 조금 기다려서, '일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네 방의 탄환을 침착하게,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쏘았다는 것이다.

(...)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나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따. 그러나, 보통 사람에게 장점인 것들이 어떻게 죄인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뒤 검사의 말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그의 말이 들려왔다. "그가 하다못해 후회하는 빛을 보이기라도 했던가요? 여러분,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심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는 단 한 번도 자기의 가증스러운 범행을 뉘우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나에게로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는데,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는 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을 그다지 뉘우치고 있지는 앟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토록 악착스럽게 덤벼드는 것이 나에게는 의외였다. 그에게 나는 다정스럽게, 거의 애정을 기울여,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위우치는 일이란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해 주고 싶었다. 나는 항상 앞으로 일어날 일, 오늘 일 또는 내일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나의 처지에서는 누구에게도 그러한 어조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다정스럽게 대하거나 호의를 보일 권리가 없는 것이었다. 검사가 나의 영혼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다시 귀를 기울이려고 애를 썼다.

검사는, 배심원 여러분, 나는 그의 영혼을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사실상 나에게는 영혼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 인간다운 점도, 인간들의 마음을 지켜 주는 도덕적 원리도 찾아볼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하고 그는 이어 말했다.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을 비난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가 얻을 수 없는 것이 그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해서 나무랄 수는 없는일이빈다. 그러나 이 법정에 있어서는 관용이라는 소극적 덕목은, 그보다 더 어렵기는 하지만 더 고귀한 덕목, 즉 정의라는 덕목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이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심리적 공허가 사회 전체를 삼켜 버릴 수도 있는 구렁텅이가 될 경우에는 더욱이 그러합니다." 그가 엄마에 대한 나의 태도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심리 중에 한 말을 그는 다시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저지른 범죄를 이야할 때보다 훨씬 더 길었다. 어찌나 길던지, 결국은 그날 아침의 더위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적어도 차석 검사가 말을 멈출 때까지는 그랬다. (p.111-113)

 

그이 말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사람은, 자기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를 등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전자는 후자의 행위를 준비하는 것이며, 말하자면 그러한 행위를 예고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이었다. (p.114)

 

검사가 자리에 앉자, 상당히 오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더위와 놀라움으로 어리둥절해졌다. 재판장이 잔기침을 하고 나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덧붙여 할 말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으므로 일어서서 그저 생각나는 대로, 아랍인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그건 하나의 의사표시라고 대답하고, 지금까지 자기는 나의 변호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변호사의 말을 듣기 전에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분명하게 말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빨리 좀 뒤죽박죽이 된 말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의 변화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뒤이어 즉시 그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시간도 늦었고, 자기의 진술은 여러 시간을 요하는 것이므로 오후로 미루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정은 동의했다. (p.115)

 

그러나 그 모든 장광설들, 나의 영혼에 관해 이야기했던 한없이 긴 그 모든 날들과 시간들 때문에, 모든 것이 빛깔 없는 물처럼 변해 버리는 것 같았고 나는 그 속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 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그곳에서 내가 하고 있던 부질없는 그 모든 것이 목구멍에까지 치밀고 올라왔고, 나는 다만 어서 볼일이 끝나서 나의 감방으로 돌아가 잠잘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p.117)

 

우리들은 매우 오랫동안, 아마 거의 사오십 분 가까이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더니 얼마 후 종이 울렸다. 변호사는, "배심원 측의 답신을 배심원 대표가 읽습니다. 당신은 판결문 낭독 때에야 들어오게 될 것이빈다." 하고 말하면서 나를 두고 가 버렸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층계를 뛰어가고 있었으나, 멀고 가까움을 분간 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는 법정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무엇인지 읽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금 종이 울리고 피고석 문이 열렸을 때 나에게로 밀려온 것은 장내의 침묵, 그리고 그 젊은 신문기자가 눈을 옆으로 돌린 채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 야릇한 감각이었다. 나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장이 나에게 이상스러운 말로,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히는 감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어떤 배려의 표시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간수들은 나에게 아주 부드럽게 대했다. 변화사는 나의 손목 위에 그이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재판장이 나에게 무엇이든지 덧붙여 말할 것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없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끌려 나온 것은 그때였다. (p.119)

 

사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과장된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다하다는 사실을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24)

 

낮 동안에는 줄곧 상고 생각이었다. 나는 이 상고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믿는다. 효과를 면밀히 따져서 나의 성찰로부터 최대의 효력을 얻는 것이었다. 나는 늘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곤 했다. 상고기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든지 에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 어떤 경우에든지 당연히 그 뒤엔 다른 남자들 다른 여자들이 살아갈 것이고 여러 챈년 동안 그럴 것이니까 말이다. 요컨대 그것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 지금이건 이십 년 후건 언제나 죽게 될 사람은 바로 나다. 그때 그러한 나의 추론에 있어서 좀 거북스러웠던 것은, 앞으로 올 이십 년ㄴ의 삶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속에 느껴지 저 무서운 용솟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십 년 후에 어차피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내 생각이 어떠할까를 상상함으로써 눌러 버리면 그만이었다. 죽는 바에야 어떻게 죽든 언제 죽든 그런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일이었따. 그러므로(그리고 어려운 일은 이 '그러므로'라는 말이 나타내는 모든 추론을 잊지 않도록 명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상고의 기각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p.126-127)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사제복 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 버렸다.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으냐?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 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 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특권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 가진 존재다.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자기 어머니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살라마노의 개와 그의 마누라나 그 가치를 따지면 매한가지다. 자동인형 같은 그 작은 여자도, 마송과 결혼한 그 파리 여자나 마찬가지로, 또 내가 결혼해 주기를 바라던 마리나 마찬가지로 죄인인 것이다. 셀레스트는 레몽보다 낫지만, 셀레스트나 마찬가지로 레몽도 나의 친구라고 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마리가 오늘 또 다른 사람의 뫼르소에게 입술을 내바치고 있은들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이 사형수야, 도대체 알기나 하느냐?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이런 모든 것을 외쳐 대며, 나는 숨이 막혔다. 그러나 벌써 사람들이 사제를 내 손아귀에서 떼어 내고 간수들이 나를 위협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한동안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괴어 있었다. 그는 마침내 돌아서서 사라졌다. (p.133-135)

 

그가 나가 버린 뒤에,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에 별이 보였으니 말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따.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따. 참으로 오랜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싯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 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p.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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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카뮈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의미는 정확하게 말해서 1부와 2부 사이의 평관계에 있다." 소설 1부는 그날그날의 별 의미 없늠 뫼르소의 생활을 묘사한다.그리고 2부의 법정에서 그 생활과 행동의 의미가 해석된다. 법정은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무심한 인물로,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후회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덕적 원칙이 결여된 인물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똑똑한 인물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그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이 불가능해짐으로써 그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어떤 인물인가? 작가 자신이 말했듯이 소설 전체에 걸쳐 그는 오직 삶이, 혹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제기하는 질문에 대답할 뿐이다. 그는 "적게 말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 장면ㄴ에 이르면 감옥 안으로 찾아온 부속 사제 앞에서 분노를 트뜨린다. 처음으로 자신의 가슴곡에 묻어두었던 생각을 폭발시킨 것이다.

카미는 " 예술 작품 전체에 걸쳐 계산되어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눈 밝은 비평가라면 한 인물을 묘사한 것 속에서 그 인물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자신의 비밀스러운 그 무엇을 독자에게 털언호는 그 '유일무이한 순간'을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당신은 소설의 결말 부분이 하나의 집중된 순간이며 특별한 대목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단 말입니까? 내가 묘사한 그 너무나도 산만하게 분산된 존재가 마침내 스스로를 한데 집중시키게 되는 그 특별한 대목을 말입니다....이 책의 주인공은 결코 앞장서서 무엇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제기하는 질문이건 다른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이건 그는 항상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그친다는 사실을 당신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코 그 무엇도 단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의 음화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그의 심오한 태도에 대해 당신이 지레짐작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 책의 마지막 장면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빈다. 그런데 당신은 바로 그 부분을 주목하지 않은 것입니다." (p.188-19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작가수첩 - 카뮈 (김화영 옮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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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

프랑스의 피에 누아르 작가, 저널리스트이자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에서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뤼시앵 카뮈(프랑스어: Lucien Camus)는 1885년생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전투 중 하나인 마른 전투에서 1914년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 카트린 엘렌 생테스(프랑스어: Catherine Hélène Sintès)는 스페인인으로 문맹이며 청각장애를 가졌다. 그는 스페인을 좋아했으며 어머니를 무척 사랑해 공공연하게 알제리 독립 반대의 이유가 어머니의 생활 터전이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였다.
카뮈는 어린 시절 알제리에서 가난하게 지냈다. 한 집에서 할머니, 어머니, 형 그리고 두명의 외삼촌들과 살았다. 1923년 그는 프랑스의 중등학교인 리세에 들어갔으나 빈부격차를 크게 느꼈고 어머니가 하녀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했다. 후일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중퇴하였다. 재학 중에도 각종 임시직을 전전하였으며 대학 중퇴 이후에도 가정교사, 자동차 수리공, 기상청 인턴과 같은 잡다한 일을 하였다. 이 시기 평생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만난다. 그는 1935년 플로티누스(Plotinus)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학사 학위 과정을 끝냈다. 그 동안에 아마추어 극단을 주재했다. 가난했지만 멋부릴줄 아는 멋쟁이였으며 축구팀 골키퍼를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훗날 외모면에서 종종 험프리 보가트에 비교되곤 했다.
1935년 카뮈는 명백히 마르크스주의의 강령에 대한 지지보다는 에스파니아 내전의 원인이 된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관심때문에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 1936년 좀 더 독립적인 성향의 알제리 공산당이 수립되자 카뮈는 알제리 공산당에 가입하였고, 이로 인해 그의 공산당 동료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 결과 그는 트로츠키주의자로 비난받았고 1937년 당에서 제명당했다. 그는 공산당의 교조적인 태도를 혐오했다.
1934년 시몬 이에(Simone Hie)와 결혼했으나 서로간의 불륜과 시몬의 모르핀 중독으로 인해 1940년 이혼한다. 1940년 카뮈는 수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랑신 포르(Francine Faure)와 결혼했다. 비록 그는 프랑신을 사랑했지만 카뮈는 결혼제도에 대하여 극렬히 반대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결국 이 부부의 관계는 비끄덕 거렸다. 심지어 프랑신이 1945년에 케서린과 잔이라는 쌍둥이 아이를 낳은 후에도 혼외 관계를 가졌으며 그중 널리 알려진 스페인의 배우 마리아 카자레스와의 관계도 있었다. 이러한 카뮈의 불륜은 프랑신에게 더 고통을 주었다.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운영된 '노동자의 극장'(Théâtre du Travail)을 설립했다. 공산당과의 결별 이후에도 이 극단은 에키프 극단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속되었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그는 사회주의자를 위한 소품을 썼으며, 1938년부터는 좌익 성향의 신문 알제 뤼페블리껭(Alger-Republicain)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문화기사와 르포를 주로 썼다. 사르트르의 책 '구토'에 대한 서평도 알제 뤼페블리껭에 쓴 것이다.
카뮈는 1939년 독일에 저항하기 위해 참전을 신청했지만 폐결핵으로 프랑스 군대입대를 거절당했다. 이후 카뮈는 파리스와(Paris-Soir) 잡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소위 포니 워(Phony war)라고 불리는 시기에 카뮈는 반전론자였다. 그러나 그는 1941년 11월 15일 파리에서 베르마흐트(독일육군)가 저지른 가브리에 페리의 처형을 목격하고 독일에 대한 저항을 결심했다. 그 후 그는 보르도로 이동하여 그 근교에서 파리스와의 활동을 끝냈다. 이 해, 그의 첫 책인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저술하였다. 그는 1942년에 잠시 동안 알제리의 오랑으로 돌아갔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카뮈는 지하에서 같은 이름의 신문을 출판하던 레지스탕스 조직 콩바(Combat)에 가담하였다. 이 그룹은 나치에 저항하여 활동하였고 여기서 카뮈는 보샤르(Beauchard)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뮈는 연합군이 파리를 해방한 1943년 신문의 편집자가 되어 전투 이후를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편집인으로서는 드물게 1945년 8월 8일에 일어난 사건 직후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논설을 실었다. 카뮈는 콩바가 상업적인 신문이 되자 1947년 사임했다. 이때부터 카뮈는 장폴 사르트르를 알게 되었다.
전쟁 이후에 카뮈는 사르트르와 함께 생제르망 가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를 자주 찾기 시작했다. 카뮈는 프랑스적 사고에 대한 강의를 하기 위해 미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비록 그는 좌익의 정치학을 배웠지만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그의 강한 비난으로 인해 사르트르와 소원해지게 되었다.
1949년 카뮈의 폐결핵이 재발하여 2년간 은둔상태로 살았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명쾌하게 반대하는 반란과 반역에 관한 철학적 분석의 내용을 담은 《반항하는 인간》를 발표했다. 이 책은 프랑스에 있는 그의 많은 좌익 성향의 지식인 동료들을 화나게 했고 결국 사르트르와의 논쟁을 통하여 그와 사실상 절교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카뮈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그는 문학 활동을 멈추지 않고 연극들을 번역에 집중했다.
철학에 대한 카뮈의 기여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시지프 신화》에서 설명하고 《이방인》과 《패스트》와 같은 많은 작품에서 설명한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 세계의 의미, 정순함에 대한 우리의 열망의 결과에 따른 부조리에 대한 카뮈의 사상이다. 그의 학문적 동반자 사르트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카뮈가 실존주의자들의 캠프로 굴러 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에세이 에니그마와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에 대해 이념적 꼬리표를 붙여 분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 중 많은 중요 부분은 실존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작품으로는 <이방인(異邦人)> <시지프의 신화>로 사상가로서의 인정을 받았고, 극작가로서는 해방 후 <오해>(1944)와 <칼리귤라>(1945)로 성공을 얻었다. <계엄령(戒嚴令)>의 각색이 바로에 의해 상연되고, 그 다음에는 <정의의 사람들>이 나왔는데, 작품 수는 얼마 안되지만 순도(純度)가 높은 고전적 문체의 실존주의 연극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 후에는 자작보다는 각색·번안 등에 힘을 쏟아, 라리베의 <정령>, 칼데론의 <십자가에의 예배>,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등이 있다.
그는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67년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세계 박람회에서 에드몽 자베스, 장 폴 사르트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네 명의 프랑스 작가 중 하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카뮈는 상스(sens)에서의 자동차 사고로 Villeblevin의 작은 마을에 있는 Le Grand Fossard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1960년 1월 4일에 사망했다.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전철 티켓이 발견되었다. 카뮈가 전철로 여행을 떠나려 했음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는 전철 대신에 자동차로 떠났다. 동시에 카뮈는 젊은 시절 가장 잘못된 죽음의 방법은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카뮈가 소련 체제와 알제리 독립에 반대한 것으로 인한 의도적 암살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카뮈는 평소 자신이 사랑하여 죽기 직전까지 거주한 프랑스 남부의 시골 마을인 루르마랭(Lourmarin)의 묘지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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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 (김예령 옮김, 열린책들)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이혜윤 옮김, 동서월드북)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진하 옮김, 을유문화사)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이정서 옮김, 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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