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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3. 서양 - 고전 수필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홍지수 옮김, 펭귄클래식)

by handaikhan 2023. 2. 4.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 (1854년)

  

노동에 시달리는 인간은 매일매일 고결한 삶을 살 여유가 없으며 사람들과 진정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할 여력도 없다. 그랬다가는 시장에서 그 사람의 노동 가치는 점점 하락할 것이다. 기계처럼 이란 할 뿐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가진 지식을 쉬지 않고 이용해야 하는 사람이 어찌 자신의 무지를 기억해 낼 겨를이 있겠으며,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서야 어떻게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비나 하기에 앞서 때때로 무상으로 먹이고 입히고, 강장제로 원기를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의 본성에 내재한 최상의 자질은 과분과 같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보존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또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p.13)

 

사람들은 살아 있으나 다른 사람의 돈에 파묻혀, 늘 내일 갚겠다고 말하면서 오늘 파산한 채로 죽어가고 있다. (p.13)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견해야말로 그의 운명을 결정, 아니 암시 한다. (p.14-15)

 

허송세월은 영원에 상처를 입힌다. (p.15)

 

사람들은 묵묵히 절망적인 삶을 꾸려 나간다. 체념은 절망으로 굳어져버린다.

지혜로운 이는 삶을 절박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p.15)

 

옛사람들은 옛날 방식을 따랐고, 새 시대의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p.15)

 

나이를 먹으면 얻는 것 보다 잃은 것이 많은 법이다. 따라서 단지 연륜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젊은이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충고는 없다. 노인의 경험 역시 아주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고, 그들의 삶도 개인적인 이유로 비참하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보았다는 사실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p.16)

 

인간의 능력을 과거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그동안 해온 시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껏 어떤 실패를 했든지 간에 괴로워하지 말라. 누가 감히 당신에게 당신이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끝마치라고 명하겠는가? (p.17)

 

우리는 덧없이 짧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시대를 체험해야 한다. 또한 각 시대에 존재했던 서로 다른 세상을 모두 체험해야 한다. 역사, , 신화를 보라! 다른 이들의 경험을 적은 글 중에 이보다 더 경이롭고 유익한 글은 없다. (p.17-18)

 

한 세대는 좌초한 배를 버리듯이 지난 세대가 이룩한 과업을 포기하는 법이라오. (p.18)

 

우리는 스스로를 제외하 다른 것들에는 너무나도 지대한 관심을 쏟으면서 정작 자신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다. 우리가 병들어 일손을 멈춘다고 세상이 멈추는가? (p.18)

 

사람들이 살 가치가 있는 바구니를 만들든지, 최소한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든지, 그도 아니면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할 만한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p.26)

 

약간의 상식과 사업 수완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p.27)

 

의복 제조업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인류가 제대로 옷을 갖춰 입도록 하는 것보다는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p.34)

 

문명인이 야만인보다 더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저 구질구질한 생활필수품을 장만하고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 평생 일해야 한다면, 문명인이 야만인보다 더 좋은 집에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p.42)

 

비싼 비용을 들여 공부를 하는데 인생을 놀이 삼아 살거나 단순히 연구 대상으로 보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으로 살아보라. (p.60)

 

피라미드도 경탄의 대상이 될 가치가 없다. 어떤 야심 찬 얼간이의 무덤을 짓느라 수많은 사람이 일생을 굴욕적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얼간이가 차라리 나일 강에 빠져 개 먹이나 됐다면 더 현명하고 용감하다고 여겨졌으리라. (p.67)

 

하루하루를 진실로 충만하게 사는 행위,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누구든 그의 정신이 가장 고양되고 명징한 시간, 자기 삶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조할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p.104)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내가 숨을 거둘 때 깨어 있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은 짧게 베어버림으로써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삶이 척박하면 척박한 대로 그것을 온전하고 진실되게 경험하여 세상에 알리고, 황홀한 삶이라면 다음 여정에서 사실대로 밝히리라.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삶이 선한지 악한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고, 이승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신을 영원히 찬양하는 것이라고 다소 성급하게 결론짓는다. 신화에서는 우리가 오래전에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개미처럼 척박한 삶을 산다. 우리는 학과 씨름하는 피그미족과 같다. 실수를 거듭하고 계속해서 타격을 받은 후에는 비참함만 남는다. 우리의 삶은 하찮고 지엽적인 일들로 인해 야금야금 낭비되고 마침내 소진되어 버린다. 정직한 사람은 열 개 이상의 손가락으로 수를 셀 필요가 거의 없고, 극단적인 경우 열개의 발가락을 쓰면 된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나머지 수는 한데 묶어버리면 된다. 간소화, 간소화, 또 간소화하라! 관여하는 일을 백 가지 천 가지가 아니라 두세 가지로 제한하라. 백만이 아니라 여섯 정도만 세고 소비지출은 최소로 하라. 문명 세계의 삶이라는 역랑 한가운데는 구름이 짙고 폭풍이 불고 모래 지옥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고비를 헤치고 나아가야 하다. 그러므로 받4ㅏ 밑바닥에 가라앉지 않고 항구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철저히 삶의 항로를 계산하여 방향을 잡아야 한다. 별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항구에 무사히 도착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도 진정 셈에 능숙한 이다. 검소하라, 검소하라. 필요하다면 하루 세 끼가 아니라 한끼로 족하라. (p.104-105)

 

우리는 왜 그렇게 서둘러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주리게 될 것이라 단정한다. (p.107)

 

철학자에게 신문이란 모두 뒷공론일 뿐이다. 신문을 편집하고 읽는 이들은 차를 마시며 한담하는 노파와 같다. 그러나 뒷공론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p.108)

 

우리는 멋진 실체는 외면하고 황당무계한 허위와 망상을 가장 견고한 진실로 여긴다. 우리가 실체만을 주시하고 그 실체를 우리가 아는 사실과 비교하는 망상에 빠지지 않는다면 삶은 동화나 천일야화에 나오는 연회 같으리라. 우리가 필연적이고 존재 이유가 있는 것만을 존중한다면, 길거리에는 음악과 시가 울려 퍼지리라.. 우리가 침착하고 현명한 인간이 될 때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만이 영원하고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을 것이며, 사소한 두려움과 쾌락은 현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리라. (p.109)

 

무엇이 숭고하고 고귀한지 알기 위해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그 현실에 흠뻑 젖어드는 방법밖에 없다. 우주는 끊임없이 그리고 성실하게 우리의 생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빨리 든 천천히 가든 길은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생각하는 데 소비하자. 자연을 좇아 하루하루 깨어 있는 신중한 삶을 살자. 그리고 인생의 철로 위로 떨어지는 호두 껍데기나 모기 날개 같은 사소한 일들 때문에 철로를 이탈하지 말자. (p.111)

 

제대로 독서하는 행위, 즉 가치있는 책을 읽고 그 참뜻을 파악하는 행위는 고결한 수련이며 현 시대가 찬미하는 어떤 수련과정보다도 철저하게 독자를 단련시킨다. (p.116)

 

문학은 그 어떤 형태의 예술보다도 우리와 친근한 동시에 보편적이며, 삶 자체에 가장 근접한 예술이다. (p.117)

 

타고난 결점은 절대 극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듯하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떤 사람의 성향을 알게 되면, 그것이 현재 상태에서 개선되거나 악화되리라는 기대나 걱정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똥개 꼬리에 열을 가해 다림질하고 굴레에 감아 열두 해 동안 정성을 쏟아도 본래의 형태는 변하지 않는다. 이 꼬리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고질적인 습관을 뿌리 뽑는 유일한 방법은 꼬리로 아교를 만드는 것이다. (p.1369-137)

 

다른 새들이 잠잠할 때면 가면 부엉이가 운율을 뽑아냈는데 마치 죽음을 애도하는 여인네의 곡소리같이 들렸다….이런 부엉이의 울음소리는 때때로 다른 새들의 노래를 상기시켰는데 마치 다른 새들이 부르는 노래의 어둡고 슬픈 이면, 울부짖어야만 하는 후회와 탄식의 소리를 들려주는 듯했다. 부엉이들은 한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죄를 짓고 타락하여, 한밤중에 숲 속을 헤매면서 자신들이 죄를 저지른 바로 그곳에서 울부짖으며 찬가를 불러 속죄하려는 불길한 혼령들이다. 부엉이는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갈아가는 서식지인 자연이 얼마나 다양하고 무한한 능력을 지녔는지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수리부엉이들도 나에게 곡을 들려주었다. 가까이서 들으면 자연이 낼 수 있는 가장 구슬픈 소리처럼 느껴진다. 마치 자연이 이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죽어가는 인간의 신음소리의 전형으로 만들어 놓으려 한 듯하다. 모든 희망을 잃고 동물처럼 울부짖는 인간의 흐느낌이 느껴지는, 나약한 인간이 숨을 거둘 때 내는 소리같은 부엉이의 울음소리는 어두운 계곡에 들어서면 꼬르륵꼬르륵 하는 선율 때문에 더 처참하게 변한다. 그러면 나는 어느새 건강하고 용기 있는 모든 생각이 썩어 문드러지면서 끈적끈적한 곰팡이가 피는 단계에 도달한 사람을 표현하듯 부엉이 울음소리를 따라 하게 된다. 그 소리는 송장 먹는 귀신과 백치가 미친 듯이 울부짖는 소리를 연상케 한다. 지금도 숲 속 멀리서 부엉이 한 마리가 쥐어짜는 듯한 소리로 응답하는데 거리가 멀기 때문인지 더더욱 구성지게 들린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부엉이의 울음소리는 밤이나 낮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언제 들어도 내게 즐거운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부엉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쁘다. 인간을 대신해 어리석고 미치광이 같은 온갖 바보짓을 해주니 말이다. 부엉이 소리는 햇살이 닿지 않는 늪과 어두컴컴한 숲에 참으로 어울리며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광활하고 원시적인 자연을 암시하는 듯하다. 부엉이는 우리 모두가 가진 음울하고 불만족스러운 생각들을 상징한다. 태양은 온종일 늪지대의 표면을 비추고 전나무 한 그루는 겨우살이 이끼가 낀 채 서 있고, 작은 매들이 그 위를 맴돌고 있으며 박새는 상록수 사이에서 지저귀고 자고새와 토끼는 살금살금 몸을 숨긴다. 이제 음울한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으면 다른 생명들이 깨어나 자연의 의미를 표현한다. (p.104-142)

 

달콤한 취기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는커녕 오히려 그 기억 속에 더 흠뻑 젖어들게 한다. (p.142)

 

우리 주위에는 충분한 공간이 존재한다. 지평선이 우리 팔꿈치에 닿은 적은 없다. (p.146)

 

나만의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이 작은 세계는 오롯이 내 것이다. (p.147)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아니라오. (p.149)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고 서로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만큼 떨어져 있는 기간을 충분히 갖지 않는다. (p.152)

 

최고의 만족을 아는 자가 가장 고귀한 정신을 지녔느니라. (p.159)

 

우리는 길을 잃고서야, 즉 세상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무한한 지를 깨닫는다. (p.191)

 

호숫가는 수염이 자라지 않는 호수의 입술이다. (p.203)

 

사람들은 모두 자연 속에 살면서도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이는 없다. 아름다운 깃털로 꾸미고 노래를 부르는 새들은 꽃과 조화를 이루지만, 싱싱하고 황홀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는 젊은이나 소녀는 어디 있는가? 자연은 이들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피어난다. 감히 천국을 말하는가! 그대들은 이 세상도 욕되게 한다. (p.223)

 

자기 안의 짐승들을 다스려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고 고결한 정신을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행복한가. (p.246)

 

불결함은 정결함과 나란히 서 있거나 앉지 못한다. (p.247)

 

나태는 무지와 관능적 욕망을 낳는다. (p.247)

 

인간은 신체라고 불리는 신전을 짓는 이다. 누구든 자신이 숭배하는 신을 위해 그 신전을 순수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성 들여 지어야 한다. 대리석에 망치질을 하는 행위로 모면하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는 조각가이자 화가이고, 작품을 만드는 데 쓰는 재료는 우리 자신의 살과 피와 뼈이다. 고결함은 잘 다듬어지고 채색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며, 비천함과 관능적 욕망은 인간을 야수처럼 만든다. (p.248)

 

우리의 상상력은 자연보다 더 깊숙이 잠수하고 더 높이 솟아오른다. (p.322)

봄비가 한번만 내려도 풀잎의 푸르름이 선명해진다. 긍정적인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미래도 낙관적으로 보인다. 과거에 놓친 기회를 아쉬워하고 속죄하며 그것을 우리의 의무라고 여기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몇 방울의 이슬에도 감사하는 풀잎처럼 늘 현재에 살고, 닥치는 모든 일을 잘 견뎌낸다면 우리는 축복받은 것이다. 이미 봄이 왔는데도 우리는 아직 겨울 속을 서성거린다. 화창한 봄날 아침, 모든 인간의 죄는 용서되고 사악함은 사라진다. 태양이 화창하게 내리쬐는 동안에는 가장 사악한 죄인마저 돌아올지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의 순수함을 되찾고, 이를 통해 이웃의 순수함을 식별해 낸다. 지난날 우리는 이웃을 도둑, 주정뱅이, 호색가로 여기고 그저 동정하거나 경멸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이 첫 봄날 아침에 우리는 평화롭게 일하는 우리의 이웃을 보리라. 지치고 타락한 그의 정신이 평화로운 기쁨으로 가득하고, 그가 새로운 날을 축복하며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같은 봄의 기운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모든 잘못은 용서된다. 그에게서는 선의가 감돌고 마치 새로 생겨난 본능처럼 표현할 길을 서투르게 모색하는 성스러움 마저 느껴진다. 잠시 남쪽 언덕 기슭에서는 천박한 농담이 메아리 치지 않는다. 그러니 메마르고 뒤틀린 가지를 뚫고 나와 한해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순수하고 고운 새싹이 보인다. 그 조차도 신과 기쁨을 나쁜다. (p.349-350)

 

자신이 품은 꿈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고 자기가 꿈꾼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꿈을 이루게 된다. 꿈을 추구하자면 포기해야 할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도 극복해야 하리라. 꿈을 추구하면 새롭고 보편적이고 보다 진보적인 법칙이 자신의 주위와 내면에 형성되기 시작한다. 혹은 기존의 법칙이 더 진보적인 의미에서 자신에게 적합하게 확장되고 해석된다. 그리하여 그는 한층 더 숭고한 존재의 법칙을 따를 권리를 지니고 사는 것이다. 그러한 법칙에 맞추어 삶을 담백하게 만들면 우주를 관장하는 법칙도 그리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고, 고독은 고독으로 느껴지지 않으며, 빈곤과 약점 역시 더 이상 빈곤과 약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공중에 성채를 짓는다고 해도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 그곳이 바로 성채가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성채들 아래로 기초를 단단히 올리면 된다. (p.360-361)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옷은 팔아버리고 우리의 생각을 간직하자. 우리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음을 신은 알아주리라. 온종일 거미처럼 다락방에 갇혀 있어도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면 세상은 마찬가지로 광활하게 느껴진다. (p.366)

 

영혼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 (p.367)

 

메마른 인간 사회에서도 가장 볼품없고 아무도 원치 않는 가구에서 뜻하지 않게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이 탄생해 마침내 황홀한 여름을 누리게 될지 누가 아는가! (p.372)

 

우리 눈을 멀게 하는 빛은 그저 어둠일 뿐이다. 깨어 있는 자만이 동트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앞으로도 수많은 날들이 밝아오리라. 태양은 한낱 샛별에 불과하다. (p.372)

 

월든 (펭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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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년 7월 12일 ~ 1862년 5월 6일)
미국 출신의 철학자, 시인, 수필가. 랠프 월도 에머슨과 함께 초월주의자와 생태주의자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1862년 미국 콩코드에서 사망했다. 하버드 대학 졸업 후 가업인 연필 제조업, 교사, 측량 업무 등에 종사했지만 평생 일정한 직업에 정착하지 않고 곧 학업에 매진했다. '자연'의 저자인 초월주의자 랄프 왈도 에머슨 등과 친분을 맺었다.
자비 출판한 첫 작품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1849년)은 젊어서 세상을 떠난 형과 선상 여행을 정리한 수필로 당시의 사회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표작 《월든 - 숲속의 생활》(Walden, 1854년)은 2년 2개월에 걸친 숲에서 혼자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그 사상은 이후 시대의 시인과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소로우의 사후 《메인의 숲》(The Maine Woods, 1864년)과 《케이프 콧》(Cape Cod, 1865년) 등의 여행기와 자연을 쓴 에세이, 일기, 서간집 등 수많은 작품이 출판되었다. 소로우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것이 많고, 자연 문학(Nature writing)의 계보에 자리매김 된다.
그의 일생은 물욕과 인습의 사회 및 국가에 항거해서 자연과 인생의 진실에 관한 파악에 바쳐진 과감하고 성스러운 실험의 연속이었다.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홀로 월든의 숲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기도 했으며, 인두세 납부 거부로 투옥도 당했고, 후에는 노예 해방 운동에 헌신하였다. 그의 그러한 정신은 '시민 불복종'으로 이어진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독립 운동과 킹 목사의 시민권 운동 등에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
에머슨과 함께 위대한 초월주의 철학자이며 미국 르네상스의 원천이었다. 그는 자연과학자이기도 하며 주요 저서로는 《월든》 《시민 불복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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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복종 - 소르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사)

월든 - 소르 (정회성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395)

월든 - 소르 (김석희 옮김,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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