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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3. 서양 - 고전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이창식, 박에스더 옮김, 산해)

by handaikhan 2023. 2. 3.

 

헬렌 켈러 - 사흘만 볼 수 있다면 (1903년)

 

이따금씩 생각해봅니다. 매일매일 내일 당장 죽을 사람처럼 사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라고요. 그러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록새록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부드럽고 활기차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 앞에 많은은 날들이 끝없이 펼쳐질 거라 생각할 때에는 그런 마음을 종종 잃어버리고 맙니다. (p20)

 

얼마 전,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마침 숲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별거없어. 내가 그런 대답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게 별루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앞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촉감만으로 흥미로운 일들을 수백 가지나 찾아 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오묘하게 균형을 이룬 나뭇잎의 생김새를 손끝으로 느끼고,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껍질과 소나무의 거칠고 울통불퉁한 껍질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집니다. 봄이 오면 자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첫 신호인 어린 새순을 찾아 나뭇가지를 살며시 쓰다듬어봅니다. 곷송이의 부드러운 결을 만지며 기뻐하고, 그 놀라운 나선형 구조를 발견합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이와 같이 내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운이 아주 좋으면, 목청껏 노래하는 한 마리 새의 지저귐으로 작은 나무가 행복해하며 떠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시냇물도 즐겁지만 수북하게 쌓인 솔잎이나 푹신하게 깔린 잔디를 밟는 것도 화려한 페르시아 양탄자보다 더 반갑습니다. 계절의 장관은 끝없이 이어지는 가슴 벅찬 드라마이며, 그 생동감은 내 손가락 끝을 타고 흐릅니다. 때로 내 마음은 이 모든 것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해집니다. 그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눈으로 직접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그런데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거의 보지 못하더군요. 세상을 가득 채운 색채와 율동의 파노라마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갖지 못한 것만 갈망하는 그런 존재가 아마 인간일 겁니다. 이 빛의 세계에서 시각이란 선물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 단지 편리한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건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p22-23)

 

내가 만일 단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모아 그들의 얼굴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그들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외적인 증거를 가슴에 새길 겁니다. 그리고 내 충직하고 믿음직한 개 두 마리의 눈도 들여다 보렵니다. 나는 오래도록 숲을 산책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렵니다. 그리고 눈이 보이는 사람들에겐 끝없이 펼쳐져 보이는 자연의 장대한 영광을 단 몇 시간안에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끈기 있게 밭을 가는 말들과 흙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농부들의 신선한 즐거움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찬란하고 아름다운 저녁놀까지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합니다.

둘째 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전율어린 기적을 바라보겠습니다. 태양이 잠든 대지를 깨우는 장엄한 빛의 장관은 얼마나 경외로울까요. 나는 이날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 바치고 싶습니다. 인간의 진화과정이라는 시대의 만화경을 들여다보고 싶은 바람이랄까요. 박물관을 찾을 생각입니다. 자연사박물관이 이 세계의 물질적인 측면을 보여준다면, 미술관은 인간 영혼의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줍니다.

나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는 일에 둘째 날을 바치고 싶습니다. 둘째 날 저녁은 연극이나 영화를 보며 지내고 싶습니다. 연극이나 영화나 멋진 경치를 보면서 그 색채와 우아함과 율동을 즐길 수 있는 시력의 기적을 고마워한 분들이 얼마나 계시는지요? 율동적인 움직임이야말로 상상하건데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광경 중 하나일 겁니다.

셋째 날, 오늘은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보낼까 합니다. 이제 나는 도시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우선 아주 번화한 곳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미소를 보고 행복을 느낍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또한 자부심을 가지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정심을 느낍니다.

내 눈은 언제나 행복과 불행 모두에 주목합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더 깊이 탐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언제나 행복과 불행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내 마음속은 사람들과 물건들의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또한 내 눈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가볍게 지나치지 않습니다. 눈길이 머무는 것마다 놓치지 않고 붙잡기 위해 나는 애를 씁니다.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광경들도 있지만,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광경에 눈을 감고 외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도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눈감는 것은 마음과 정신에 눈감는 것이니까요.

마지막 날 저녁에 나는 아주 신나는 코미디 공연이 한창인 극장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군요. 그래서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희극적인 요소를 감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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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렌 켈러 (Helen Adams Keller, 1880 -1968)

헬런 켈러는 1880년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 터스컴비아에 있는 아이비 그린 농장의 저택에서 남부 동맹의 전직 사무관인 아서 H. 켈러(Arthur H. Keller)와 로버트 E. 리 남부 동맹 총 사령관의 사촌이자 전직 남부 동맹 장군이었던 찰스 W. 애덤스의 딸인 케이트 애덤스 켈러(Kate Adams Keller) 사이에서 태어났다.[4][5] 그녀의 가족은 스위스에서 왔다.[6] 생후 19개월 후에 의사로부터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위와 뇌에서의 급성 출혈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그녀는 평생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 때는 가정 요리사의 6살 난 딸이자 그녀의 수화를 이해하는 아이인 마르타 워싱턴과 대화가 가능했었다.[7] 헬런 켈러는 7살 때부터 집안에서 60개가 넘는 수화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했다. 소련의 시청각 장애 심리학자인 A. 메스체리코프에 의하면, 마르타와의 교제와 그녀의 가르침은 헬렌이 나중에 발전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한다.
1886년, 헬런의 어머니 케이트 켈러는 찰스 딕슨의 《American Notes》라는 시청각 장애인인 로라 브릿맨에 대한 성공적인 교육에 관해 쓰여진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곧 그녀는 공문을 헬런과 그의 아버지를 동행하게하여 눈, 귀, 코, 목에 관련한 전문가인 J. 줄리언 치솜을 찾아 조언을 얻기위해 볼티모어로 보냈다.[8] 그는 이어서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었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그녀의 가족을 연결시켜주었다. 벨은 보스턴 남쪽에 위치해있고 브릿맨이 교육을 받은 학교인 《펄킨스 시각 장애 학교》에 연락해보라고 조언하였다. 그 학교의 교장 선생인 마이클 아나가노스는 시력 감퇴가 있는 20살의 학교 졸업생 앤 설리번에게 헬런의 가정 교사가 되는 것을 물어보았다. 이 일은 곧 49년간 이어지는 인연의 시작점이 되었다. 곧 그녀는 헬런의 가정교사가 되고 나중에는 그녀의 동반자로서 함께하게 된다.
앤 설리번은 1887년 3월에 헬런의 집에 도착하여 곧바로 헬런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헬런이 단어의 스펠링을 그녀의 손에 적어주는 식으로, 그녀가 헬런에게 선물로 가져온 'd-o-l-l'(doll, 인형)의 스펠링으로 시작하였다. 그 다음 달에는 헬런이 의사소통 방식에서 큰 발전을 보였는데, 그녀가 헬런의 손에 차가운 물을 틀어주고 '물(water)'이라는 단어를 손바닥에 쓰면서 연상시켜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헬런은 설리번과 세상의 다른 흔한 사물들을 익히는 데 시간을 쏟았다. 오른쪽 눈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헬렌은 사물의 윤곽을 형상화시키며 배웠다. 그녀의 양쪽 눈은 의학적인 이유와 외관적인 이유 때문에 유리 복제품으로 대신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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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자서전 - 헬렌 켈러 (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행복해지는 가장 간단한 방법 - 헬렌 켈러 (안기순 옮김, 공존)

나의 스승 설리번 - 헬렌 켈러 (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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