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역사 책방 21
문밖을 나서니 갈곳이 없구나 - 최기숙
목차
머리말 - 옛 책에서 만난 사람, 삶을 이야기하다
一. 거지에 홀린 선비, 추문 속에 꽃을 보다
청춘 거지에 홀려 풍류 판을 펼치다 - 성대중의 개수전
풍문 속의 떠돌이 거지 - 박지원의 광문자전
거지 예술가, 신선이 되다 - 김려의 장생전
망태 속에 감춘 인생 - 김려의 삭낭자전
二. 가릴 수 없어 쏟아진 재능, 세상을 울리다
취기에 젖어 세상을 조롱하다 - 남유용의 김명국전
타고난 재능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 조희룡의 예인전
벙어리 칼의 장인, 소리 없는 날카로움을 베다 - 이옥의 벙어리 신씨전
기억의 조각으로 이은 천재 시인의 생애 - 이상적·김조순·이덕무·박지원의 이언진전
三. 이 여자의 파란만장한 생애, 상식을 뒤바꾸다
살인자인가, 열녀인가 - 이덕무의 은애전
궁녀 수칙이 숨어 산 까닭 - 성해응·이건창·이옥의 수칙전
이 여자가 독신으로 살아간 사연 - 조구명의 매분구전·옥랑전
영월의 빛, 어린 기생의 절의 - 홍직필의 기생 경춘전
四. 호협한 풍류 남아, 세상을 들썩이다
도박장의 협객, 시인이 되다 - 조희룡의 김양원전
모두가 벌벌 떠는 싸움꾼 - 조희룡의 장오복전
미인을 돌처럼 본 미소년 - 조희룡의 천흥철전
협기를 버리고 착실히 살다 - 유재건의 박원묵전·정래교의 김택보 묘지명
五. 비천한 골목의 선비, 그늘진 어둠을 걷다
사람의 훈향으로 날씨같이 물들이다 - 홍직필의 서석린전
신분이 낮다고 인품도 낮을까 - 조희룡·김희령의 박영석전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을 따른 생원 - 김낙서의 문김 생원전
六. 몸의 역사를 읽는 명의, 희망의 불꽃이 되다
독학자, 백광현 - 정래교의 백태의전
평등한 몸의 교신자 - 홍양호의 조광일전
아픔이 아픔에게 - 김려의 안황중전
七. 이름 없는 소년 소녀, 언어의 집 속에서 영생을 얻다
효도의 길에 묻힌 소년 절명기 - 홍양호·유재건의 홍차기전
법의 마음을 움직인 효심 - 정래교의 취매전
유괴된 서울 소년, 무전여행을 하다 - 조희룡의 유동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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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능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 조희룡의 예인전
조희룡이 쓴 <최북전>은 그의 기이한 성품과 행적에 관한 호기심으로 일관한다. 황공망을 존경해 본받으며 닮고 싶어 했지만 결국 자신의 필법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언급에서는 '독창성'과 '고유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조희룡의 예술관이 엿보인다.
조희룡이 주목한 것은 곧잘 흥분하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ㅣ 않는 우뚝한 성품이다. 그에 관한 여러 일화가 있겠지만, 그의 일생을 정리하는 전에서 소개한 일화는 오만한 성품을 드러내거나 이것저것 재지않고 기분에 휩쓸려 산 호방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신분이 낮은 처지의 화가였지만 고관대작을 만나도 절대 기죽지 않은 최북을 보고 조희룡은 같은 중인으로서 시원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최북은 화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아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했으며, 그림을 그려 달라는 고관대작의 집에도 드나들었다. 그런 집에 어떤 이가 찾아와 최북을 가리키며 "저자는 누구요?"라고 한 것이 최북의 귀에 거슬렸다. 최북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마주 보면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요?"
최북은 신분의 고하로 사람의 귀천을 가르던 조선 시대의 제도에 단박에 금을 그은 해체주의자다. 호방한 성품과 예술 세계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에게 그림을 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 때나 그림이 그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감성과 직관이 무르익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응집된 시간을 조율해야 했다. 제아무리 고관대작이라 해도, 값을 따지지 않고 그림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스스로 '호생관'이라는 호를 붙인 최북이지만 돈과 권위를 내세우며 그림을 내놓으라는 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그림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의 야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고관대작에게 맞대응할 길은 없었다.. 어서 그림을 내놓으라는 위협에 최북은 자기 눈을 찔렀다. 밖으로 향할 수 없는 분노가 안으로 되돌려진 것이다. 그는 외눈박이가 되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스스로 육체에 새겼다.
조희룡이 주목한 최북의 삶은 대체로 이렇다. 점잖고 인내하는 문인 선비의 삶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 여겼기에 전에 담ㅁ았다.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일화가 있다.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시원한 구룡 연못을 본 최북이 갑자기 흥분했다
"천하의 명사라면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는 스스로 명사라고 자부하던 속내를 드러내며 연못에 투신하려 했다. 죽음조차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선택해 맞이하려 한 그는 기질에 충실한 기분파였다. 그의 삶을 통해 그가 지켜 온 기상과 자유가 넘쳐흐른다. 예술가에 대한 경외와 호기심이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에 고즈넉이 담겨 있다. 조희룡은 최북의 일생을 적은 뒤에 이렇게 논평했다.
호산거사는 말한다.
최북의 기풍이 매섭다. 높은 가문에 아첨하지 않으면 그만일 것을 어찌 이토록 고통을 자처한단 말인가?
세상과 절대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 육신의 파괴도 서슴지 않은 최북에 대해 조희룡은 그 매서운 기풍을 높이 사면서 재능 많은 인재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해 절통한 심정으로 표현했다. 육체를 해칠지언정 정신과 혼만은 지키겠다던 화가 최북의 생의는 그렇게 우리에게 알려져, 먼 시간의 뒤에도 서슬 퍼런 기세로 애상을 거부하며 이것이 자유로운 영혼이 사는 법이라고 말해 준다. (p.112-115)
(같이 읽으면 좋은책)
호생관 최북 - 최북 (국립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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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趙熙龍, 1789년 ~ 1866년)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평양.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 석감(石憨), 철적(鐵笛), 호산(壺山), 단로(丹老), 매수(梅叟)이며, 서울 출신이다.
그는 1847년에 벽오시사(碧梧詩社)를 결성했으며, 1849년에는 헌종의 명을 받아 금강산을 유람, 이를 소재로 한 시를 지어 바쳤다. 그러나 1851년 조정의 전례 문제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임자도로 유배되었으며, 1853년까지 그곳에서 유배 생활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시와 서예, 그림에 모두 능했는데, 특히 서예에서는 추사체를 잘 썼으며, 그림에서는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렸다.
주요 저서로는 《호산외사 (壺山外史)》, 《해외난묵 (海外蘭墨)》, 《석우망년록 (石友忘年錄)》이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홍매대련(紅梅對聯)》, 《매화서옥도 (梅花書屋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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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 조희룡 - 이선옥 (돌베개)
매화삼매경 - 조희룡 (한영규 옮김, 태학사 태학한문선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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