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코르네유 - 르 시드 (1636년)
스페인 남부 세비야의 카스티야 왕국에 시멘이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왕국에서 가장 용맹하기로 명성이 높은 백작의 딸이었다. 수많은 귀족 자제들이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안달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과년한 딸을 둔 백작은 딸 시멘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과연 누구인지, 시멘이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시멘의 하녀 엘비르를 불러 물었다.
"나도 많은 젊은이들이 시멘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가 그 애를 좋아하는지 너는 다 알 테지. 어디 내게 말해 보아라."
"아가씨에게 열정을 보이는 분들이 많지요. 모두 저에게까지 잘 보이려고 애를 쓴답니다. 그중에 진정으로 따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두 분이에요. 돈 로드리그 씨와 돈 상슈 씨지요. 하지만 시멘 아가씨가 다정한 눈길로 그들의 사랑을 부추기는 건 아니랍니다. 그냥 무관심하게 두 분을 지켜보고 있지요. 아가씨는 아버님이 남편을 선택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12-13)
"아, 정말 행복해. 하지만 그 즐거움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 운명은 한순간에 바뀌기도 하잖아. 커다란 행복 속에는 커다란 불행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두려워." (p.14-15)
"놀라지 마. 내 고통 받는 영혼은 그들의 결혼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어. 내 마음의 휴식은 오로지 거기에 달려 있어. 사랑은 희망을 먹고 산다고 하지. 희망이 사라지면 사랑도 함께 죽는 법이야. 시멘이 로드리그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된다면 내 희망은 사라지겠지. 내 이 슬프고 뜨거운 사랑의 모험도 끝이 나겠지. 그때는 내 영혼도 치유되겠지. 하지만 로드리그가 결혼할 때까지는 그를 향한 사랑은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를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마지못해 그러 뿐이야. 하지만 나오는 건 한숨 뿐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억지로 사랑하지 않으려고, 경멸하려고 애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나는 반으로 쪼개져 있어. 아무리 용기를 내도 가슴은 타오르고 있어. 그들의 결혼은 내게 치명적이야. 나는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결혼을 바라고 있어. 명예를 지킬 수 있거든. 하지만 사랑도 명예만큼 매혹적이야. 사랑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나는 죽을 거야." (p.18)
"아들아, 더 이상 묻지 마라. 나도 너의 사랑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명예를 잃고 사는 삶은 가치가 없다. 더욱이 소중한 사람이 모욕을 주었다면 그 모욕은 그만큼 큰 셈이다. 너는 큰 모욕을 받은 것이다. 너는 내 칼도 쥐고 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으마. 내 원수를 갚아라. .내 원수는 바로 너의 원수다. 네가 손색없는 나의 아들임을 보여다오. 운명이 나에게 가져다준 불행 때문에 나는 슬픔에 젖어 있다. 가라, 달려가라, 날아가라! 원수를 갚아라."
돈 디에그는 아들을 남겨둔 채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돈 로드리그는 번뇌에 빠져 절규했다.
"오, 이 무슨 고통이 찾아왔단 말인가! 사랑이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이런 불행이 닥치다니! 아버님이 치욕을 겪으시고 그 모욕을 준 이가 바로 시멘의 아버지라니! 내 명예를 향해 내 사랑이 손을 내젓고 있구나. 나를 말리고 있구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면 내 사랑을 잃을 것이라고! 명예는 내 가슴을 뜨겁게 하고 사랑은 내 팔을 잡는구나. 사랑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불명에 속에서 살 것인가!
오, 이런 비할 데 없는 고통이여! 오, 아버지가 내게 넘겨주신 칼이여! 대답해다오. 너는 내 명예를 지키라고 내게 주어진 것이냐, 아니면 시멘을 잃으라고 내게 주어진 것이냐! 아, 차라리 죽었으면! 그녀도 나를 괴롭히는구나. 아버지의 모욕에 대하여 복수를 하면 그녀는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모욕을 견뎌낸다면? 명예를 잃는다면? 나는 그녀의 사랑을 얻을 자격이 없는 놈이 될 것이다. 그래, 죽자. 적어도 시멘을 모욕하지 말고 죽자.
아, 그러나, 복수도 하지 않고 죽다니! 내 명예를 그렇게 버리다니! 사랑 때문에 내 영혼을 팔다니! 그래, 그 생각을 떨쳐 버리자. 가자, 내 팔아! 최소한 명예는 지키자. 이래도 저래도 시멘을 잃어야 한다면 최소한 명예는 지키자.
더 이상 고뇌하지 마라, 나의 영혼아! 내게 우선하는 것은 연인보다 아버지다. 싸우다가 죽든 고통으로 죽든, 내가 아버지에게 받은 피의 순수함은 지키리라. 복수를 향해 달려가자. 이렇게 말설였다는 사실조차 부끄럽구나. 아버님에게 모욕을 준 자가 시멘의 아버지라 하더라도 복수를 향해 달려가자." (p.26-27)
"무슨 말씀을 하시오. 아무리 큰일을 했다 하더라도 왕은 결코 신하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아니라오. 백작은 너무 우쭐해 하고 있소. 이걸 명심하시오. 전하를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의무만을 행하는 것이오. 그렇게 자신만을 너무 내세우다가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 것이오." (p.3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판세를 읽는 승부사 조조 - 자오위핑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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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나 같은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전하가 나를 처벌하려면 무장하라고 하세요. 내가 죽느니 오히려 국가 전체가 죽을 것이오." (p.30)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겠소. 하지만 그대 손으로 내 가련한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 나는 조금도 후회 안 하오. 나는 당연히 할 바를 했소. 그대 아버지가 존경하는 내 아버지에게 씻기 어려운 모욕을 주었소. 나도 수치심을 느꼈소. 나는 나와 아버님의 명예를 더립힌 데 대해 복수했소.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똑같이 할 것이오.
하지만 내 고백하리다. 그대를 향한 내 사랑 때문에 망설인 것도 사실이오. 사랑의 힘은 컷소. 복수를 감행해야 할지 치욕을 견디며 살아야 할지 망설이게 만들 정도였으니. 폭력을 거두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소. 그대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저울추를 기울게 한 것이오.
하지만 나는 곧 정신을 차렸소. 명예를 잃은 자는 그대의 사랑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소. 그대는 명예로운 나는 사랑하지만, 불명예스러운 나는 증오하리라는 것을 알았소. 그대를 향한 사랑 때문에 내 명예를 잃는 것은 동시에 그대의 사랑도 잃게 하는 것이오.
나는 그대에게 고통을 주었소. 그러나 내 명예를 지키고 그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소. 나는 이제 내 명예에 대해서도, 내 아버님에 대해서도 할 바를 다 했소. 이제 사죄할 대상은 당신뿐이오. 나는 당신에게 내 피를 바치기 위해 이곳에 왔소. 자, 나를 그대 아버지의 피에 제물로 바쳐서 그대의 명예를 찾으시오." (p.53-54)
"아들아, 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명예다. 너는 내 명예를 회복시켰다. 승리의 깃대를 높이 올려야만 한다. 너의 그 용감한 마음에서 나약함을 지워버려라. 명예는 하나뿐이지만 사랑할 여인은 많다. 사랑은 즐거움에 불과하며 명예는 의무이다." (p.57-58)
'그는 시멘을 사랑했다. 그는 살아남아 그녀의 증오를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이 그의 죽음을 원하는, 그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랑을 잃었고 연인의 ㅂ고수를 위해 생명을 버렸다. 그는 시멘보다는 명예를 택했고,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시멘을 사랑했다.'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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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6년 6월 6일 ~ 1684년 10월 1일)
프랑스의 비극 작가로, 몰리에르, 장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3대 극작가 중 하나이다. 그는 “프랑스 비극”의 창립자로 불리며, 거의 40년 동안 희곡을 작성하였다.
루앙의 성직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심이 깊은 분위기 속에서 자라고 예수회(Society of Jesus)가 경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라틴문학, 특히 비극시인 세네카에 심취했다.
후에 에스파냐 연극을 연구하여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수학(修學) 후에는 고향 루앙에서 성직자가 되는 한편 사교계에도 출입, 연애사건이 계기가 되어 쓴 희극 <멜리트>를 1629년에 파리에서 상연, 예상외의 성공을 올렸기에 파리로 진출했다.
1633년, 그는 리슐리외 등 4명의 극시인과 함께 코메디 데 튀를을 형성했으나, 소심한 반면 자유를 갈구하는 성격 때문에 탈퇴하여 루앙에 돌아왔다. 그 후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36년에는 <르 시드>를 발표, 대성공을 거두는 한편, 대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르 시드>는 이 작가의 성공작인 동시에 프랑스 고전극의 기초를 확립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청년기사 동 로드리그는 아버지가 받은 치욕을 씻기 위해 애인 시메인의 부친 동 고메스 백작을 결투로 쓰러뜨린다. 시메인은 자식된 의무로서 국왕에게 로드리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이 의무감에 의해 정념을 초극하려는 경향으로서 코르네유의 비극은 의지 비극이라고도 불리며 이는 희비극의 외면적인 갈등 대립을 심리적으로 내면화시켰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표현에도 대구(對句)의 명문이 많고 지금도 많이 애송되고 있다.
이 논쟁 이후 잠시 침묵을 지켜왔던 코르네유는 1640년, 로마 기사의 명예를 묘사한 <오라스>, 로마황제의 덕을 칭송하는 <신나>, 그리고 1643년에는 기독교 순교자의 숭고함을 주제로 하는 <풀뤼우크트>, 다음해에는 강렬한 에고이즘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로드귄> 등 많은 명작을 내놓았으며 비극의 거장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러한 작품은 모두 의지와 정념을 대립시키면서 의지의 승리와 그것에 이르는 인간적인 고뇌를 웅장한 명문과 아름다운 서정을 교차시키며 묘사한 걸작이라 하겠다. 그 이후 희극의 명작 <거짓말쟁이 사내>(1644)를 발표, 몰리에르 이전의 사교계에 고상한 풍속희극을 제공한 공적은 크다고 하겠다.
그는 1647년에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페르타리트>(1652)는 치명적인 실패작이었으며 파리에서 낙향, 한때는 루앙에 은둔하기도 했다. 그 후 당시의 재무상 푸케의 간청이나 아우인 토마 코르네유의 성공등에 자극을 받아 극단에 복귀, <외디프>(1659), <세르트리우스>(1662), <아틸라>(1667), <쉬레나>(1674) 등을 썼다. 이러한 작품은 운문이나 장면에 의해 정적인 미는 있으나 심리상으로나 문체상으로도 율동에 넘치는 라신에게 압도되어 크게 떨치지는 못했다.
그의 동생인 토마 코르네유(Thomas Corneille, 1625-1709)도 극시인이 되어 에스파냐극의 번안에 솜씨를 발휘, 광기 어린 로마네스크극 <티모크라트>(1653)는 당대에 가장 성공한 작품(상연 50회)이 되었으나 문학적으로는 무가치하고 형의 명성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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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 환상 오라스 - 피에르 코르네유 (김덕희 옮김, 책세상)
코르네유 희곡선 - 피에르 코르네유 (김덕희 외 옮김, 이화여대출판부)
1. 르 시드 Le Cid (비극) - 송민숙 옮김
2. 오라스 Horace (비극) - 조만수 옮김
3. 폴리왹트 Polyeucte (비극) - 김애련 옮김
4. 거짓말쟁이 Le Menteur (희극) - 김덕희 옮김
5. 속 거짓말쟁이 La Suite du Menteur (희극) - 박무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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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고전 문학 (서양) > 4. 서양 - 고전 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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