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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김보영 옮김, 펭귄클래식, 영한합본판)

by handaikhan 2024. 3. 14.

 

스콧 피츠제럴드 - 위대한 개츠비 (1925년)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리고 상처받기 쉬운 시절에 아버지는 내게 충고를 몇 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평생 가슴속에 새겨 두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네가 가진 장점을 다 가진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기억하렴."

아버지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셧지만, 우리 부자는 항상 말을 아끼면서도 유난히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기에 나는 아버지의 말에 그 이상의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결국 나는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런 성격 탓에 수많ㅇ흔 별난 사람들이 내게 마음을 터놓았고, 생각만 해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적잖이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다.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이런 자질이 엿보이면 비정상적인 사람은 재빨리 간파해서 그것에 달라붙는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난폭한 녀석들의 은밀한 고민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모사꾼이라는 부당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대부분의 비밀 고백은 내가 애써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속내를 드러내려고 하면 나는 종종 잠든 척하거나 뭔가에 몰두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혹은 경박하게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젊은 사람들이 드러내 보이는 속내는, 적어도 그들이 속내를 드러낼 때 사용하는 표현은 대개 남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거나, 감정을 억제하더라도 속이 빤히 들여다 보여서 볼썽사납기 마련이다. 어쨌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희망을 주는 모양이다. 아버지가 고상한 척 말씀하시고, 내가 고상한 척 되새기고 있듯이, 기본 예절은 날때부터 사람마다 다른 법인데, 혹여라도 그것을 잊어버릴까 슬며서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나의 관용을 자랑했으니, 이제 그 관용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품행이란 단단한 바위나 습기 찬 늪지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그것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든 상관하지 않게 된다. 지난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이 제복을 입은 군인처럼 도덕적으로 영원히 군기가 잡힌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특권 어린 시선으로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그런 떠들썩한 유람은 이제 원하지 않았다. 오직 개츠비, 이 책에 제목을 부여해 준 그 남자만은 나의 이러한 반응에서 예외였다. 개츠비, 내가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사람. 개성이란 것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공적인 몸짓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뭔가 화려한 것, 삶의 약속을 감지하는 고도의 감성 같은 것이 있었다. 마치 1만 5천 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난 지진을 감지하는 복잡한 기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맥없는 감수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것은 희망을 바라는 비범한 재능이자 낭만적인 태도였고, 그때껏 내가 그 누구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다시 쉽게 찾아내기도 힘들 것 같은 그런 기질이었다. 그렇다. 결국엔 개츠비가 옳았다. 인간의 속절없는 슬픔과 숨가쁜 환희에 대해 한동안 관심을 끊었던 것도 개츠비를 희생물로 삼은 것, 그의 꿈이 사라진 자리에 비참하게 나폴거리던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p.13-15)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n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p.303)

 

북미 대륙에서 가장 이상한 지역 중 하나에 집을 얻은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 집은 뉴욕에서 정확히 동쪽으로 뻗어나간 시끌벅적하고 가느다란 섬에 있었는데, 자연적으로 특이한 여러 지형들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지형 두 곳이 있었다. 뉴욕 시에서 3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거대한 달걀 모양의 땅덩어리 두 개가 보잘 것 없는 작은 만을 사이에 두고 방대한 습지인 롱아일랜드 협협, 서반구에서도 인간의 손에 가장 잘 길들여진 그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두 땅덩어리가 정확하게 달걀 모양은 아니었다. 콜럼버스 이야기에 나오는 달걀처럼 맞닿은 면이 평평했다. 하지만 두 지형이 워낙 서로 비슷해서 그 위를 지나가는 갈매기들은 분명 헷갈렸을 것이다. 반면 날개가 없는 존재들에게는 모양과 크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면에서 그 두 땅이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흥미로웠다.

나는 웨스트 에그에 살았는데, 두 지역 중에서 상류층이 덜 선호하는 곳이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두 지역 사이에 깔려 있는 기이하고도 상당히 불길한 차이를 매우 피상적으로밖에 설명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내 집은 해협에서 5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달걀 모양 지형의 맨 끝에 있었는데, 한 철 임대료가 1만 2천 달러 혹은 1만 5천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두 저택 사이에 끼어 있었다. 오른쪽 저택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노르망디에 있는 어느 시청 건물을 그대로 모방한 것인데, 한쪽에는 야생 담쟁이덩굴이 수염처럼 얇게 덮인 새로 지은 탑이 있고, 대리석 수영장과 함께 무려 5만 평 가까이 되는 잔디밭과 정원이 딸려 있었다. 바로 개츠비의 대저택이었다. 아니, 좀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때는 개츠비 씨를 알지 못했으니까, 개츠비란 이름의 신사가 거주하는 대저택이었다. 우리 집은 눈에 거슬릴 법도 한데, 워낙 작아서인지 다들 그냥 지나쳤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는 바다가 보였고, 이웃의 잔디밭도 조금 보였으며, 백만장자들과 지척에 살고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모든 비용이 한 달에 고작 80달러였다.

보잘 것 없는 만 건녀편, 상류층이 모여 사는 이스트 에그에는 궁전 같은 하얀 저택들이 해변을 따라서 반짝이고 있었다. 톰 뷰캐넌 부부와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차를 몰고 그곳으로 달려가던 그날 저녁, 드디어 여름의 역사가 시작된다. (p.17-18)

 

이따금씩 그녀와 베이커 양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대로 된 잡담도 아닌 일관성 없는 농담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하얀 드레스처럼, 모든 욕망이 결여된 그들의 비인간적인 시선처럼 차가웠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하면서 톰과 나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건 서로 대접받고 대접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분 좋은 예의에 불과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제 곧 저녁 식사가 끝나고 얼마 뒤에는 밤도 지나가서 이냥저냥 모든게 끝나버리리라는 것을. 그건 서부와는 너무나도 다른 결말이었다. 마지막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는 밤의 시간 속에서도 끝없이 실망스러운 기대에 매달리는가 하면, 순간순간을 마음 졸이며 초조하게 맞이하는 게 바로 서부의 방식인 것이다. (p.27)

 

한동안 마지막 햇살이 로맨틱한 손길로 그녀의 발그레한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빨려들 듯 나는 숨을 죽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곧 그녀의 얼굴을 비추던 빛이 사라졌다. 해질 무렵 왁자지껄 흥겨웠던 거리를 아이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는 것처럼, 빛줄기가 아쉬움을 남기며 서서히 그녀에게서 사라져갔다. (p.29)

 

"그 얘기를 들으면 내가 매사에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알게 될 거예요. 음,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어요. 그의 소재를 아무도 몰랐죠. 마취에서 깨어난 나는 완전히 버려진 기분이었어요. 간호사에게 곧바로 아들인지 딸인지 물어봤어요. 딸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고개를 돌려 울어버렸어요. 그러고는 '괜찮아요. 딸이라서 기뻐요. 그 애가 커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런 세상에서는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가 되는 게 여자에게는 최고니까요'라고 말했어요."

"어쨌든 내가 모든 걸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겠지요?"

그녀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요.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까지도. 그리고 난 알아요. 온갖 곳을 다 가보고, 온갖 걸 다 지켜보고, 온갖 짓을 다 해봤으니까요." 그녀의 눈이 마치 톰처럼 반항하는 빛을 띠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경멸하듯 섬뜩하게 웃었다. "닳고 닳았어요.....오, 세상에! 난 닳고 닳은 여자라고요!"

그녀의 목소리가 끊기자 그녀에게 향한 내 관심과 믿음도 끊어졌다. 그녀가 했던 말이 근본적으로 위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 모두가 나에게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일종의 계략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그녀는 사랑스러운 얼굴에 능청맞은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와 톰이 꽤 유명한 비밀 사교 클럽에 속해 있다고 주장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p.33)

 

그에게 말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베이커 양이 저녁 식사 때 그에 대한 얘기를 했으니, 처음 소개를 하며 운을 때는 데는 얼마간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갑자기 혼자 있는 걸 만족스러워 하는 듯한 암시를 그에게서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두운 바다를 향해 기이한 자세로 두 팔을 쭉 뻗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가 그 순간 떨고 있었다고 맹세코 자신할 수 있다. 무심결에 나도 바다 쪽을 힐끗 보았다. 아주 작은 초록색 불빛 하나가 멀리 부두 끝에서 희미하게 반짝거릴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개츠비를 보았을 때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소란스러운 어둠 속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p.37-38)

 

두 번째 위스키가 나왔다. '마시지 않아도 마신 것과 똑같이 느끼는' 캐서린을 빼고, 이제 모두가 쉬지 않고 술을 달라고 했다. 톰이 벨을 눌러 관리인을 불러서는, 그 자체로 완벽한 저녁 식사가 된다는 유명한 샌드위치를 사오라고 내보냈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부드러운 황혼 속을 지나 공원을 향해 동쪽으로 걷고 싶었다. 하지만 나가려고 할 때마다 격렬하고 집요한 논쟁에 휘말리게 되어 마치 밧줄로 끌어 당겨지는 것처럼 의자 속에 파묻혔다. 어쩌면 높은 도심 하늘에 줄지어 늘어선 우리의 노란 창문들은, 어두워져가는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위를 오려다본 사람들에게 인간의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넌지시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궁금해 하면서 그렇게 올려다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안에 있는 동시에 밖에 있었다. 고갈되지 않는 삶의 다양함에 매혹되는 동시에 혐오감도 느끼면서. (p.53-54)

 

달이 더 높이 떠올랐다. 해협 위에 둥실 떠 있는 삼각형 모양의 은빛 비늘이 잔디밭 위에서 퉁퉁거리며 터져 나오는 둔탁한 벤조 소리에 맞춰 조금씩 떨고 있었다. (p.66-67)

 

빵빵거리는 경적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가 힐끗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웨이퍼 같은 가느다란 달이 개츠비의 집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예나 다름없이 멋진 밤을 장식하는 그 달은 여전히 불이 환한 그의 정원에 가득 울려 퍼졌던 파티의 소란과 떠들썩한 웃음소리에도 꿋꿋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득 텅 빈 공허가 그의 집 창문들과 커다란 대문에서부터 흘러나와, 현관에 서서 손을 들고 정중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집주인에게 완벽한 고독을 안겨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p.78)

 

뉴욕, 그곳이 안겨 주는 그 흥미진진하고 짜릿한 느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가는 남자들과 여자들, 자동차들이 들뜬 시선에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때로는 5번가를 걷다가 군중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들을 골라 몇 분 동안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 누구도 알아 채거나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따금씩, 내 마음속에서는, 후미진 거리의 길모퉁이에 있는 그들의 아파트로 그들 뒤를 따라가곤 했다. 그들은 문을 통과해 아늑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돌아서서 내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매혹적인 대도시의 황혼 속에서 때로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식당에서 보낼 혼자만의 저녁 시간을 기다리며 창문 앞에서 어슬렁대는 가난한 젊은 직원들, 밤과 삶의 가장 강렬한 순간들을 허비하면서 황혼 속에 서 있는 그 젊은 직원들에게서 말이다. (p.79)

 

실제로 사랑에 빠진 건 아니었지만 그녀에 대해서 어떤 애정 어린 호기심 같은 것이 있었다. 세상을 향한 그녀의 얼굴, 지루한 듯 도도해 보이는 그 표정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아닐지 모르지만, 가식적인 태도에는 결국 뭔가 감추는 게 있기 마련이다. (p.80)

 

조던 베이커는 영리하고 약삭빠른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멀리 했다. 이제 보니 그것은 그녀가 규범을 피해가는 것이 불가능한 곳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구제할 수 없이 부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것을 못 견뎌 했다. 아마도 그런 골프 대회에서처럼 내키지 않는 상황과 만났을 때 세상을 향해 차갑고 거만한 미소를 날리는 동시에 자신의 강하고 활기 넘치는 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런 어린 나이임에도 속임수를 쓰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내게 별로 달라질 건 없었다. 여자의 부정직함은 결코 심하게 나무랄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그저 유감스러운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곧 잊어버렸다. (p.80-81)

 

그는 데이지가 톰에게로 가서 '당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 한 마디 말로 지난 4년간의 기억을 말끔히 지우고 나면 좀 더 현실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중 하나는, 그녀가 자유로워지면 루이빌로 함께 돌아가 그녀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었다. 마치 5년 전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데이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요.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렇게 여러 시간 동안 앉아서..."

그가 갑자기 말을 중단하더니, 과일 껍질과 버려진 선물, 짓밟힌 꽃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적막한 길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나라면 데이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겠어요. 과거를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천만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고말고요!"

그는 마치 집 주변이 어두운 그림자 속에,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가까운 곳 어딘가에 과거가 웅크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위를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모든 것을 예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려놓을 겁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도 알게 될 거에요."

그는 과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개츠비가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어떤 특별한 관념, 데이지를 사랑하게 만든 그 관념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부터 그의 삶은 혼돈과 무질서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만약 그가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다시 천천히 시작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그 관념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으리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p.144-145)

 

개츠비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군요, 친구."

"데이지의 목소리에는 신중함이 없어요." 내가 말했다. "그 애 목소리는...."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하지요." 느닷없이 개츠비가 말을 꺼냈다.

바로 그거였다. 이전에는 결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했다. 그 안에서 오르내리는 무한한 매력, 짤랑짤랑 소리, 심벌즈의 노래...저 높은 곳 하얀 궁전에 있는 왕의 딸, 황금으로 감싼 아가씨.... (p.156)

 

"아니.....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게 방금 기억났어."

나는 서른 살이 되었다. 내 앞에 새로운 10년이라는 불길하고 위협적인 미래가 펼쳐진 것이다.

저녁 7시, 우리는 톰과 함께 쿠페를 타고 롱아일랜드로 출발했다. 의기양양해진 톰이 껄껄 웃으며 쉬지 않고 뭔가를 떠들어댔지만, 그의 목소리는 보도의 낯선 소음이나 머리 위 고가도로의 소란만큼이나 조던과 내게 멀게 느껴졌다. 사람이 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들의 비극적인 논쟁이 뒤에 남겨진 도시의 불빛들과 함께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데 만족했다. 서른, 그것은 외로운 10년, 독신 남성의 줄어든 지식 목록, 열정이라는 이름의 얇아진 가방, 숱이 빠진 머리 같은 것들을 에고하는 나이였다. 그러나 내 옆에는 조던이 있었다. 조던은 데이지와 달리, 말끔히 잊힌 꿈을 해를 넘겨가면서까지 간직하지 않을 만큼 현명한 여자였다. 어두운 다리를 건너는데, 그녀의 가냘픈 얼굴이 내 재킷의 어깨 위로 나른하게 떨어졌다. 서른 살이라는 가공할 만한 무시무시한 충격이 그녀의 손길에 위안을 받으며 사라져갔다.

그렇게 우리는 서늘해지는 황혼을 가르며 죽음 향해 계속 달려갔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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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 토니 태너>

 

뉴욕 시에서 3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거대한 달걀 모양의 땅덩어리 두 개가 보잘 것 없는 작은 만을 사이에 두고 방대한 습지인 롱아일랜드 협협, 서반구에서도 인간의 손에 가장 잘 길들여진 그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두 땅덩어리가 정확하게 달걀 모양은 아니었다. 콜럼버스 이야기에 나오는 달걀처럼 맞닿은 면이 평평했다. 하지만 두 지형이 워낙 서로 비슷해서 그 위를 지나가는 갈매기들은 분명 헷갈렸을 것이다. 반면 날개가 없는 존재들에게는 모양과 크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면에서 그 두 땅이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흥미로웠다. (p.17)

 

이 책의 배경에 깔린 심층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즉, 콜럼버스가 발견한 방대한 야생의 대륙을 '길들인 결과, 그 안에서 무엇이 부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그 거대한 알 - 혹은 알들? - 속에 숟가락을 집어넣으면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휙 던져버리면 딱 알맞을, 발육이 덜 된 역겨운 사산아일까? 아니면 특별하고 불가사의하며 희귀한 보물일까? 미국의 진정한 결과물들이 그 달걀 모양의 두 땅덩어리처럼 그렇게 다른 것일까? 뷰캐넌 부부가 대표하는 이스트 에그는 놀라울 정도로 무자비한 19세기 자본주의가 키우고 조장해 낸 게걸스럽고 자기만족적이며 위선적인 물질주의를 상징하는 반면, 닉과 개츠비가 있은 웨스트 에그는 가능성과 필요성을 내세우고, 물질주의가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어떤 것, 더 큰 무언가, 즉 우연적인 성공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 그리고 그런 당시의 상황에 무조건 굴복하지만은 않겠다는 어떤 이상향의 갈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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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 강신주>

감정수업 - 강신주 (민음사)

 

"금? 귀중하고 반짝거리는 순금? 아니, 신들이여! 헛되이 내가 그것을 기원하는 것은 아니라네. 이만큼만 있으면,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네. 나쁜 것을 좋게, 늙은 것을 젊게, 비천한 것을 고귀하게 만든다네. (...) 문둥병을 사랑스러워 보이게도 하고, 도둑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힌다네. 그리고 원로원 회의에서 도둑에게 작위와 궤배와 권세까지 부여한다네. 이것은 늙어 빠진 과부에게 청혼자를 데리고 온다네. 양로원에서 상처로 인해 심하게 곪고 있던 그 과부가, 매스꺼움을 떨쳐 버리고, 향수를 뒤집어쓰고 젊어져 오월의 청춘이 되어 청혼한 남자에게 간다네."

셰익스피어의 <아테네의 티몬>에서 4막 3장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에도 인간은 돈에 집요하게 집착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까 돈에 대한 탐욕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 자본주의 시대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의 탄식처럼 부유함은 모든 것을 좋고, 젊고, 고귀하고, 심지어 사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탄식 이면에는, 그래도 검은 것은 검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며 추한 것은 추한 것이라는 역설, 반대로 흰 것은 흰 것이고 좋은 것은 좋은 것이며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확신이 깔려 있다. 그렇지만 19세기 이후 산업자본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인간은 그나마 그때까지는 비록 명목상으로라도 유지했던 낭만적인 외투마저 과감히 벗어 버리게 된다. 이제 돈으로 매매할 수 없는 것들은 고귀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라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동시에 탐욕은 인간의 욕망 중 가장 지고한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탐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탐욕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스피노자 - 에티카)

스피노자의 말처럼 '무절제하게' 부를 욕망하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탐욕이라는 감정의 실체다. 그러니까 탐욕에는 중용이 있을 수가 없다. 탐욕의 상태는 목이 말라서 바닷물을 마신 상태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물을 마시면 잠시 동안 갈증은 해소된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보다 더 강한 갈증이 찾아오게 된다. 불교에서는 '갈애'라는 말이 있다. '목이 마르는 애착'이라는 뜻이다. 마실수록 더 마시게 되는, 밑도 끝도 없이 치명적으로 중독적인 욕망이 바로 갈애이자 탐욕인 셈이다. 이제 충분히 돈을 벌었으니 지금부터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자. 바로 이런 절제력이 탐욕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최저생게비는 정해질 수 있지만, 최대생게비는 정할 수 없다는 것, 이것만큼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을 규정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20세기 위대한 작가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아테네의 티몬 - 셰익스피어 (신상웅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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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형씨."

"데이지의 목소리에는 신중함이 없어요. 그 애의 목소리에는 뭔가 가득..."나는 머뭇거렸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개츠비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하얀 궁전 속 저 높은 곳에 공주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김욱동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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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소설의 줄거리는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진부한 멜로드라마처럼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부와 관련된 인가의 탐욕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읽어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은 네 명으로 압축된다. '닉'이라고 불리는 소설의 화자 '나', 5년 동안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옛 여인을 찾아온 개츠비, 개츠비의 옛 애인이자 지금은 남편을 가진 아직도 매혹적인 여인 데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청난 재산을 무기로 데이지의 남편으로 낙점받는 데 성공한 톰. 그런데 개츠비가 다시 등장하면서 데이지의 마음은 톰과 개츠비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게 된다.

사실 데이지에게 톰이나 개츠비는 모두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누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배역의 중요성이 결정되는 꼭두각시 말이다. 현재 자신의 남편 '톰'도 그래서 매력적인 사람이다. 과거의 가난을 떨쳐 버리고 엄청난 부자가 된 개츠비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심지어 데이지는 톰과의 결별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하긴 톰을 통해서, 아니 정확히 말해 톰의 돈을 통해서 꿈꿀 수 있는 것보다 개츠비를 통해 꿈꿀 수 있는 설레는, 미래의 삶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데이지라는 '황금의 아가씨'는 개츠비의 돈으로 새로운 꿈을 꾸면서 행복해한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는 데이지의 마음이자 동시에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돈의 노래이기도 하다.

소설 전편을 통해 톰과 개츠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데이지의 고뇌는 만족을 모르는 그녀 자신의 탐욕을 개츠비가 충족시켜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사랑의 고뇌 이면에는 탐욕의 고뇌가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데이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때 이것을 눈치챈 톰은 개츠비의 재산 형성 과정이 불법적이어서 그의 부유함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과도 같다고 폭로한다. 그래서 바로 이 순간이 데이지가 개츠비가 아니라 다시 톰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다. 개츠비가 데이지의 탐욕을 간파했던 것처럼, 톰도 아내의 본성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은, 5년 전 가난한 장교 신분으로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했던 것도 바로 그녀의 부유함이 뿜어내는 환상 때문이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당시 개츠비는 데이지를 얻으면 그녀의 부유함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결실을 모두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데이지는 그가 난생처음으로 알게 된 '우아한' 여자였다. 그는 온갖 숨겨진 능력을 발휘해 그런 부류의 사라들과 만나긴 했지만 그들과의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철조망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는 그녀가 몹시도 탐났다.

 

결국 개츠비의 사랑도 탐욕에서 출발했던 셈이다. 그러니 사실 위대했던 것은 개츠비가 아닐 수 있다.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개츠비, 데이지, 그리고 톰을 가로지르고 있는 '탐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 세 사람이 아니라 '돈'이었던 것이다. (p.9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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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스콧 키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년 9월 24일 ~ 1940년 12월 21일)

미국의 소설가이며 단편 작가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정확히는 노르만계 아일랜드인일 듯하다. 피츠(Fitz)라는 이름은 원래 노르만어로 '~의 아들' 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스콧 키란 이름은 미국의 국가인 "성조기"를 작곡한 프랜시스 스콧 키에게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피츠제럴드가 그의 9촌 증손자이기도 하다.
1896년 9월 24일 아버지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와 어머니 몰리 매퀼런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네소타 세인트폴에서 태어났고 집안은 가톨릭을 믿는 상류층이었다. 주로 스콧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프랜시스 스콧 키에서 따온 것도 있고 죽은 손윗누이의 이름이 스콧이라 다시 붙인 것도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엔 주로 뉴욕의 버펄로에서 살았고 2년 정도 시라큐스에서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10살 때 아버지가 P&G에서 실직당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이런 가난은 훗날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네소타로 다시 이주해 고향인 세인트폴의 세인트폴 아카데미를 다니며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이 학교 신문에 글을 기고하거나 하는 식으로 13살부터 작가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16살 때 퇴학당하고 뉴저지의 예비학교[1]인 뉴먼스쿨에 입학했다. 1913년엔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프린스턴에서 여러 동아리나 학회 같은 활동을 하며 글을 썼고 유니버시티 코티지 클럽이란 곳은 아직도 스콧이 썼던 책상을 전시해놓았다고 한다. 1917년 졸업했는데 가난했던 탓에 미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어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이 와중에 컨트리클럽에서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출신의 젤다 세이어를 만나게 되는데 돈이 없단 이유로 약혼이 파토가 난다. 그러다가 〈로맨틱 에고이스트〉란 작품을 개작해 《낙원의 이쪽》을 썼고 1919년 가을에 스크리브너에서 출판하기로 결정하자 다시 약혼한다. 1920년 3월 26일 소설은 출판되고 히트를 친다. 젤다와 스콧은 결혼한다.
1920년대 미국의 황금시대인 재즈 시대가 열린다. 재즈 시대의 사교적이고 강한 주체성을 보이는 여성들인 플래퍼를 다룬 소설을 써낸 스콧은 공전의 인기를 누린다. 당시 그의 단편소설들은 잡지들에 연재됐다. 1925년에 쓴 《위대한 개츠비》는 플래퍼나 재즈 시대를 다룬 작품 중에 최고로 친다. 스콧은 젤다와 파리로 건너가 여러 문화적인 활동을 벌이는데 이때 사귄 사람들 중 하나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헤밍웨이는 젤다한테선 그다지 좋은 인상을 못 받은 것 같은데 젤다가 스콧에게 술이나 왕창 먹여 글을 못 쓰게 한다고 생각했고 정신 나갔다(insane)고 평가했다. 그리고 스콧을 딱하게 생각하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정상인으로는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단편들이 연재된 잡지들은 당시 최고로 잘 나갔던 잡지였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The Saturday Evening Post), 에스콰이어(Esquire), 콜리어스 위클리(Collier's Weekly) 등이었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의 후기에 따르면 고급손목시계 하나를 사려고 하루 만에 써내려 간 소설도 있다. (이는 낙타 혹등이란한 소설인데 진짜 낙타 혹등에 대한 얘기다)
무수히 많은 단편소설을 써냈지만 뉴욕의 명사로서 부부가 써낸 돈이나 젤다의 치료 비용 등에 돈이 많이 들어 스콧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쪼들리게 된다. 당시 부부의 기행을 들어보면 미국의 재즈 시대가 어땠는지 감이 올 법도 하다.
1920년대 말이 되자 장편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재정적인 여건으로 계속 단편소설을 써야 했고 1930년에는 젤다가 정신병에 걸리면서 사정은 악화된다. 1932년에는 젤다를 메릴랜드의 볼티모어에 요양보낸다. 스콧은 메릴랜드의 투손에 땅을 빌려 거기서 소설을 쓰는데 유망한 정신의인 딕 디버라는 청년이 니콜 워런이란 여자를 만나 결혼하는 얘긴데 초고와 판본들이 여럿 나온다. 평론가들은 자신의 자전적인 문제를 이 소설에 투영한 것으로 본다. 한편 젤다는 유럽 생활을 바탕으로 비슷한 소설을 쓰는데 스콧은 여기에 화나서 작품을 손질하고 젤다의 담당의한테 글 못 쓰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부부 생활은 거의 파경상태였던 듯. 1934년에 위의 과정을 거쳐 써낸 《밤은 부드러워》가 출판된다. 젤다가 이 소설에 반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위대한 개츠비》와 마찬가지로 출판 당대에는 잘 안 팔렸는데 훗날의 평가는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이 작품도 보통 영미권 100대 소설을 뽑을 때 들어가는 편이다.
1930년대 후반엔 돈이 쪼들리자 할리우드로 건너가 MGM을 위해 시나리오를 쓴다. 빌리 와일더는 이를 보고 위대한 조각가가 배관공 일에나 고용된 꼴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마지막 소설이자 다섯 번째 장편인 《마지막 거물의 사랑》(The Love of the Last Tycoon, The Last Tycoon으로 부르기도 한다)을 쓴다.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사 중역인 어빙 솔버그를 원형으로 삼은 이 소설을 쓰던 중에 선전지 신문기자인 실라 그레이엄과 연인이 된다. 그가 서부에 있는 동안 젤다는 동부의 정신병원에 있었다. 그때 스콧은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였고 하루에 맥주를 30캔이나 마셨다고 한다. 그래도 1939년 금주에 성공했고 가장 행복하다 평한 시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1940년에 동맥경화로 죽었다. 그 해 12월 20일 애인인 실라와 영화 시사회에 참여한 뒤 돌아오던 중 어지럼을 호소했다. 다음 날 잡지를 보다가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벽난로 선반을 잡더니 숨을 쉬지 못하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실라가 매니저를 불렀지만 매니저가 보곤 이미 죽었다고 했다.
안치된 그의 시신을 봤던 도러시 파커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죽었을 때 올빼미 눈의 사나이가 했던 유명한 대사인 "The poor son-of-a-bitch"란 말을 그의 장례식에서 누군가 중얼대는 걸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정말 《위대한 개츠비》와 그의 인생은 여러모로 겹치는 바가 많다. 그의 시신은 메릴랜드로 운구되어 베세다란 곳에서 그의 자식인 스코티 피츠제럴드(당시 19세)의 참관 아래 2, 30명 정도의 인원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볼티모어의 록빌 유니언 묘지에 묻혔다. 1948년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에서 일어난 정신병원 화재로 젤다가 죽자 딸인 프랜시스 스코티[3]는 볼티모어의 대주교구에 항의해 비가톨릭으로 죽은 피츠제럴드를 가톨릭으로 죽은 것으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해 가톨릭 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원래 피츠제럴드는 가톨릭 집안이긴 했다. 본인은 냉담이었던 것 같지만. 1975년엔 두 사람을 합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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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이만식 옮김, 펭귄클래식)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김태우 옮김, 을유세계문학)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정회성 옮김, 책세상)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송무 옮김, 문예세계문학)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김영하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 (김욱동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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