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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여인 - 안톤 체호프 (김학수 옮김, 문예출판사)

by handaikhan 2023. 2. 5.

체호프 단편선 - 문예 세계문학 35

 

안톤 체호프 - 귀여운 여인 (1899년)

 

"또 비야!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허구한 날 비만 오니. 이건 내 모가지를 졸라매자는 건가! 날마다 손해가 이만저만해야지! 이러다간 파산이로군, 팟한이야!"

그는 올렌카에게 두 손을 쳐들어 보이며 불평을 계속했다.

"우리들의 생활이란 요모양 요꼴입니다. 올리가 세묘노브나. 울어도 시원치 않을 지경이죠! 별 고생을 다하고 죽도록 기를 쓰며 일해봐야, 그리고 어떡하면 좀 더 나아질까 하고 밤잠도 자지 않고 별궁리를 다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첫째로, 관중이 야만인이나 다름없이 무지막지하단 말이에요. 나는 그들에게 일류 가수들을 동원하여 가장 고상한 오페레타나 무언극을 공연해주지만, 과연 관중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설사 그것을 구경한다 해도 도대체 무엇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관중은 광대를 요구합니다. 아주 저속한 것을 상연해야 한단 말입니다! 게다가 날씨까지 이 모양입니다! 거의 매일 저녁 비가 오지 않습니까? 5월 10일부터 시작해서 6월 내 장마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겠어요! 구경꾼은 얼씬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자릿세는 물어야 하고, 배우들에겐 보수를 줘야 합니까?"

이튿날도 저녁 무렵 해서 또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쿠우킨은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어쩌겠다는 거야? 퍼부을 테면 얼마든지 퍼부어라! 극장이 몽땅 물에 잠기고 나는 물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실컷 퍼부으란 말이야!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저승에서까지 나를 못살게 하겠다는 게로군! 배우들이 나를 걸어 고소해도 좋다! 재판이 무엇이야?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도 좋고, 교수대에 올려놔도 겁날 것 없다!

핫, 핫, 핫!"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올렌카는 쿠우킨의 넑두리를 아무 말 없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들었고, 그러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지는 때도 있었다. 쿠우킨의 불행은 드디어 올렌카의 마음을 흔들어놓고야 말았다.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안색이 누렇고 이마에 고수머리가 덮인 작달막한 키에 몸집이 여윈 사람이었다. 음성은 가느다란 테너였는데, 얘기할 적마다 입을 샐쭉거렷고, 얼굴에는 언제나 절망의 빛이 떠돌았다. 그러나 그는 올렌카의 마음속에 그렇게 순결하고도 깊은 애정을 일으켰다. 올렌카는 언제나 ㅏ누구를 사랑하지 않는 때가 없었고, 또 그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성질의 여자였다.어릴 적에는 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그 아버지는 지금 괴로운 숨을 몰아쉬며, 어두운 방 안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앓고 있다. 그리고 2년에 한 번쯤이나 브란스크에서 다녀가는 작은어머니도 사랑했다. 여학교 시절에는 프랑스어 선생을 사랑했다. 올렌카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착하고 인자스러운 여자였다. 또한 그녀의 눈길은 잔잔하고 부드러웠으며 몸은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 통통하고 불그레한 뺨이며, 보드랍고 흰 살결에 까만 점이 찍힌 목덜미며,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을 때 떠오르는 티없이 상냥한 웃음 같은 것을 보는 사내들은, 으레 "거 괜찮게 생겼는걸...." 하며 자기들도 웃음 지었고, 여자 손님들은 얘기를 주고받다가도 "아이 참 귀엽기도 하지!" 하며 느닷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보지 않고는 못 견뎠다. (p.111-113)

 

올렌카가 태어날 때부터 살아왔고, 또 아버지의 유언장에도 그녀의 명의로 된 이 집은 도심에서 떨어진 츠이간스카야 슬로보드카에 있었다. 치볼리 야외 극장이 가까워서 저녁마다 늦도록 음악 소리와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소리를 듣노라면, 올렌카는 자기의 운명과 싸우며, 자기의 가장 큰 적인 무관심한 관중을 공격하는 쿠우킨의 모습을 연상했고, 그러면 그녀의 심장에는 달콤한 감격이 벅차올랐다. 잠을 청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새벽 녘에 그가 돌아오면 침실 창문을 똑똑 두르리며 커튼 사이로 얼굴과 한쪽 어깨만을 내밀며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쿠우킨이 올렌카에게 청혼하여 그들은 결혼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목덜미며, 포동포동한 두 어깨를 보게 되었을 때, 그는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당신은 귀염둥이로구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결혼식 날에도 밤낮을 두고 비가 온 것처럼 그의 얼굴에서 절망의 빛이 아주 사라지지는 못했다.

결혼 후에 그들은 다정스럽게 살았다. 올렌카는 입장권을 팔기도 하고, 극장 안의 여러 가지 일을 거들어주기도 하며, 계산서를 꾸미고 월급을 치러주기도 했다. 그녀의 불그레한 두 뺨과 티없이 맑고 귀여운 웃음이 매표구에서 보였는가 하면, 무대 뒤나 구내 식당에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덧 자기 친지들에게, 연극이야말로 인간 생활에서 가장 보람 있고 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며, 연극을 통해서만 인간은 참다운 위안을 느낄 수 있고 교양을 지닌 인도주의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곧잘 설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관충이 과연 그걸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광대라니까요! 어제 파우스트의 개작을 공연했더니 관람석이 아주 텅 비었어요. 그렇지만 우리 주인 바니치카와 내가 저속한 신파나 공연했더라면 틀림없이 대만원이었을 거예요. 내일 바니치카와 나는 <지옥에서의 오르페우스>를 상연하기로 했지요. 꼭 보러 오세요."

그러고는 연극이나 배우들에 관해서 쿠우킨이 하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곤 했다. 남편이 하는 그대로 예술에 대한 관중의 냉담과 무지를 탓하기도 하고, 무대 연습에 끼어들어 배우들의 포즈를 고쳐주고, 악사들의 몸짓을 감독하기도 했다. 어쩌다 지방 신문에 연극에 관한 악평이 실리면 눈물을 흘렸고, 그 악평을 해명하려고 직접 신문사에 찾아다니기도 했다. (p.113-11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파우스트 - 쾨테 (곽복록 옮김, 동서월드북)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 이윤기 (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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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enbach - Orphée aux Enfers - Willy Mattes, Hungaria PO (EMI, 1978) 

오펜바흐 - 지옥의 오르페우스

 

 

Willy Mattes, Hungaria PO (1978) Offenbach - Orpheus in der Unterwelt, Act II - Viertes Bild. Menuett ; Dieweil mein Schritt so leicht, mein Fuss so klein und nett ; Nr. 15. Vater Jupiter so vor uns tanzen se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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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제가 되어 쿠우킨은 극단을 부르러 모스크바로 떠났다. 남편 없이 올렌카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래서 밤이 새도록 별들만 바라보며 들창 가에 앉아 있었다. 그런 때 그녀는 닭장에 수탉이 없으면 괜히 겁을 집어먹고 밤새 잠을 못 자는 암탉과 자기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쿠우킨은 모스크바에서 한동안 머물렀는데, 부활절까지는 돌아갈 테니 극장 일은 이러이러하게 하라는 편지를 보내 왔다. 그러나 부활절을 일주일 남긴 월요일 밤늦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불길하게 들려왔다. 문밖에서 누가 커다란 나무 통을 쿠웅쿠웅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잠이 채 깨지 않은 식모가 맨발로 물이 질벅하게 고인 뜰을 거쳐 대문으로 달려나갔다.

"문 좀 열어주시오!"

밖에서 거칠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댁에 전보요!"

올렌카는 이전에도 남편에게서 전보를 받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만은 어쩐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보 용지를 펴 들었다. 전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반 페트로비치 금일 돌연 사망. 화요일 장례식. ***지시를 바람.

 

장례식 다음에 적힌 글자는 전혀 뜻 모를 말이었다. 발신인은 소가극단 무대 감독이었다.

"여보!"

올렌카는 흐느껴 울었다.

"나의 소중한 바니치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에요! 왜 나는 당신과 만났을까요? 왜 나는 당신을 사랑했을까요! 불쌍한 당신의 올렌카를 두고, 이 가엾고 불행한 올렌카를 두고, 당신은 혼자 어디로 가버렸단 말이에요...?"

쿠우킨의 장례식은 화요일 모스크바에서 치렀다. 그리고 수요일에 올렌카는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자 침대에 몸을 던지고, 한길에서나 이웃집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통곡했다. (p.116-117)

 

대문까지ㅣ 올렌카를 바래다준 그는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의 침착하고 위엄 있는 음성은 그녀의 귓전에서 온종일 사라지지 않았고, 눈을 감기만 하면 그의 검은 수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올렌카는 그를 퍽 좋아하게 되었다. 남자 편에서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며칠 후 조금 안면이 있는 어떤 중년 부인이 커피를 마시러 집으로 찾아와서, 식탁에 앉기가 무섭게 푸스토발로프의 말을 꺼내며, 그가 아주 착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신랑감이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시집가라면 뉘 집 색시든지 혹하고 덤빌 것이라는 말을 장황히 늘어놓고 간 일만으로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후에는 푸스토발로프 자신이 찾아왔다. 그는 불과 10분이나 앉아 있었을까, 말도 몇 마디 하지 않고 돌아갔으나 올렌카는 벌써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에게 반해버렸는지, 그날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들떠 있었다. 그래서 아침이 되기가 바쁘게 그 중년 부인을 불러오게 했다. 곧 혼담이 성립되었고, 그 다음 결혼식도 끝났다.

결혼한 후, 푸스토발로프와 올렌카는 의좋게 지냈다. (p.118)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요."

올렌카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

"남들도 모두 바시치카와 내가 사는 것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주께 간구한답니다."

푸스토발로프가 목재를 구입하러 모길레프에 다녀오는 동안 그녀는 퍽 적적해했고 밤잠도 못 자고 눈물만 짰다. 그녀의 집 건넌방을 빌려 쓰는 젊은 군 수의관인 스미르닌이 저녁이면 이따금 놀러왔다. 그는 올렌카에게 이야기도 해주고 트럼프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그녀에게는 여간 위로가 되는게 아니었다. 스미르닌의 가정 얘기는 특히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수의관에게는 처와 아들이 있었는데, 처의 행실이 좋지 못하여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자기 처를 몹시 원망하기는 하지만 아들의 양육비로 매달 40루블씩 보내준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올렌카는 한숨을 쉬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가 측은히 여겨졌던 것이다.

"주께서 당신을 구해주시도록 기도하겠어요."

층계까지 촛불을 들고 나와서 그를 보내며 올렌카는 말했다.

"심심한데 와주셔서 참 고마웠어요. 주께서 당신에게 건강을 주시고, 또 성모 마리아께서도...."

그녀의 말투는 남편을 닮아 침착하고 위엄이 있었다. 아래층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수의관을 일부러 불러세우고 그녀는 이렇게 충고했다.

"블라디미르 플라토니치, 부인과 화해하셔야 합니다. 아드님을 봐서라도 부인을 용서해줘야지요! 어린 자식 마음에 그늘이 지게해서는 안 되니까요." (p.120-121)

 

푸스토발로프 내외는 깊은 사랑 속에서 말다툼 한 번 한 일이 없이6년 동안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겨울날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상점에서 뜨거운 차를 한잔 들이켜고, 목재가 반출되는 것을 살피러ㅓ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가 그만 감기에 걸려서, 드디어는 앓아 눕게 되었다. 이름 난 의사들을 불러보았지만 그의 병세는 조금도 차도가 없더니 넉 달을 누눠 앓고는 끝내 죽어버리고 말았다. 올렌카는 다시금 과부가 되었다.

"나를 두고 당신은 혼자 어디로 가신단 말이오, 여보!"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그녀는 이렇게 통곡했다.

"당신 없이 나 혼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아요. 내가 가엾고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이웃의 여러분들이 나를 보살펴주세요. 나는 이제 사고무친의 고아가 돼버렸어요..." (p.122)

 

수의관의 견해를 그대로 남에게 되풀이한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에 대해서나 그녀는 벌써 수의관과 꼭 같은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올렌카는 그 누구에 대한 애정 없이는 단 1년도 살아갈 수 없는 여자임이 분명했다. 다른 여자였더라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겠지만 올렌카의 경우에는 누구도 악의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렌카와 수의관은 누구에게도 자기들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될수록 감추려 했지만,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올렌카는 비밀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여자였다. (p.123)

 

"똑똑히 알지도 못하는 그런 얘긴 하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소! 우리 수의사끼리 얘기할 땐 제발 말 참견 좀 그만둬요. 내 꼴이 뭐가 되겠소!"

그러면 올렌카는 놀라움과 불안이 뒤섞인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볼로치카, 난 무슨 말을 하면 좋아요?"

그리고 눈물이 글썽해서 그를 껴안으며 성내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오래 계속되지는 못했다. 연대가 딴 곳으로, 시베리아는 아니지만 아주 먼 곳으로 이동하게 되어, 수의관도 연대와 함께 영영  떠나가버렸다. 그리하여 올렌카는 다시 혼자 남았다.

이제 그녀는 그야말로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p.124)

 

그녀의 복스럽던 얼굴도 이제는 여위고 귀여움은 사라졌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전처럼 그녀를 보며 웃는 일이 없었다. 분명히 젊고 아름답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리고 다시는 그녀에게 되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행복이란 꿈도 꿀 수 없는 그늘진 생활이 새로 시작되었다. 해가 기울면 올렌카는 현관 층계에 앉아 있었다. 야외 극장에서는 음악 소리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예나 다름없이 들려왔지만,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리고 아무 욕망도 없이 그저 멍하니 텅 빈 정원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밤이 오면 잠자리에 들어가서 폐허 같은 자기 집 정원을 다시 꿈속에 보았다. 음식은 마지못해 먹는 흉내만 냈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행은 이미 아무 일에도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 주위의 사물이 눈에 띄었고, 또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는 했지만, 그런 일에 대해 아무런 자기 의견도 내세울 수 없었을뿐더러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p.125)

 

아마 천 루블을 줄 테니 말해보라 해도 뭐라 입을 뗄 재주가 없었을 것이다. 쿠우킨이나, 풋흐토발로프나, 그 다음 수의관과 함께 지낼 때는 모든 일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고, 그럴싸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머릿속과 가슴속은 자기 집 뜰처럼 공허했다. 그것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괴로운 일이었다. (p.125)

 

참으로 세월은 빠르다. 올렌카의 집은 연기에 그을리고, 지붕은 녹이 슬고 헛간은 한쪽으로 기울고, 뜰에는 잡초와 가시나무가 무성했다. 집주인인 올렌카의 얼굴에도 흉하게 주름이 늘어갔다. 여름이면 허전한 마음으로 시름없이 층계에 나와 앉아 있었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들창 가에 앉아 있었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들창 가에 앉아 있었다. 훈훈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그 바람을 타고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오면 문득 지난날의 추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나서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눈물도 오래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금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알 수 없는 공허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브리스카라는 새까만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곁에 와서 재롱을 부렸으나, 그러한 고양이의 재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모든 존재, 자기의 이성과 영혼을 독점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생활의 방향을 제시해주며, 식어가는 피를 다시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옷깃에 매달리는 고양이르 떼내어 밀어버리며 싫은 소리를 했다.

"저리 가러라! 귀찮다!"

날이면 날마다 아무런 기쁨도, 아무런 자기 주견도 없이 이렇게 세월을 보내며 해가 거듭되었다. 살림은 식모 마브라가 하는 대로 맡겨두었다. (p.126)

 

올렌카가 나가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밖을 보았을 때 하마터면 기절을 할 뻔했다. 문 밖에는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한 수의관이 평복을 하고 서 있었다. 순간 그녀에게 잊어버렸던 모든 과거가 되살아왔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한마디 말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꼈다. 걷잡을 수 없는 흥분 속에서 그 다음 두 사람이 어떻게 집으로 들어오고 어떻게 차를 마시러 식탁에 와서 마주 앉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오셧구려!"

기쁨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p.127)

 

"이 방을 쓰도록 하세요. 나는 건넌방 하나면 되니까. 그렇게 하시면 얼마나 좋을지 몰라요!"

이튿날 지붕에는 벌써 페인트 칠을 하고 벽도 희게 칠하게 했다. 올렌카는 가슴을 펴고 두 손을 허리에 얹고서 집 안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로 일을 감독했다. 얼굴에는 에전과 같은 웃음이 떠올랐으며,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그녀의 온몸에서는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수의관의 마누라가 아들과 함께 이사를 왔다. 밉게 생긴 얼굴에 머리를 짧게 자른, 성미가 까다로울 것 같은 여윈 몸집의 여자였다. 아들 사샤는 열 살 난 어린애치고는 키가 작고 뚱뚱한 편이었는데, 눈이 파랗고 볼따구니엔 오목하게 파인 보조개가 있었다. 아이는 뜰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고양이를 쫓아서 달려나가더니 곧 이어 명랑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이거 아주머니네 고양이죠?"

사샤가 올렌카에게 물었다.

"새끼 낳으면 우리 하나 주세요. 우리 어머닌 쥐를 제일 싫어해요."

차를 따라주면 사샤와 이야기를 하노라면 올렌카는 가슴이 훈훈해오고, 이 아이가 제 자식처럼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저녁에 사샤가 책상에 앉아 복습을 하면 그녀는 대견스럽게 그것을 바라보며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참 귀여깁도 하지....어쩌면 어린것이 저렇게 똑똑하고, 저렇게 깨끗하담!"

"섬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의 한 부분입니다."

사샤가 소리를 내어 읽었다.

"섬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올렌카도 받아 읽었다. 이것이 여러 해 동안 자기 주견이라는 것을 모르고 침묵 속에서만 살아온 그녀가 자신을 가지고 입 밖에 낸 맨 처음 의견이었다. 이제야 올렌카는 자기 자신의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p.128-129)

 

"이젠 돌아가요, 아주머니. 나 혼자라도 갈 수 있어."

올렌카는 멈추어 서서 소년이 학교 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소년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과거에 사랑한 일이 있는 어는 누구에게도 그처럼 깊은 애정을 바친 적은 없었다. 모성으로서의 사랑이 날이 갈수록 불타오르는 지금처럼 그렇게 헌신적이고 순결하며, 자기에게 희열을 주는 애정이 그녀의 영혼을 독차지해버린 일은 결코 없었다. 자기와는 아무 혈연 관계도 없는 이 소년에게, 볼에 박힌 오목한 보조개에, 커다란 학생모에, 그녀는 자기의 한평생을 눈물과 기쁨을 가지고 바칠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런지 누가 대답할 수 있으랴! (p.130-131)

 

밤중에 별안간 대문을 꽝꽝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올렌카는 겁을 먹고 일어나 앉았다. 숨이 막혔다. 가슴에서는 방망이질을 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리코프에서 전보가 왔구나!"

온몸을 후들후들 떨면서 올렌카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샤의 어머니가 그애를 하리코프로 보내라고 전보를 쳤나 봐....아...이 일을 어쩌면 좋아!"

올렌카는 실망 속에 빠져들어갔다. 머리와 사지가 얼음처럼 얼어들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다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렸다. 수의관이 유럽에서 돌아온 것이다.

"아이, 고마워라!"

그녀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속에 뭉쳤던 무거운 것이 차차 풀리며, 다시 가벼워졌다. 올렌카는 옆방에서 깊이 잠든 사샤를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다. 이따금 사샤의 잠꼬대가 들려왔다.

"난 싫어, 저리 가, 때리지 마!"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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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년 1월 29일 ~ 1904년 7월 15일)

러시아의 의사, 단편 소설가, 극작가이다.
체호프는 1860년 흑해 위에 있는 아조프 해 연안의 항구 도시 타간로크(Taganrog)에서 식민지 수입 상품점을 하는 아버지 파벨 예고로비치 (Pavel Egorovič)와 어머니 예브게니야 야코브레브나 모로조바 (Evgenija Jakovlevna Morozova)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조부는 원래 농노였으며 부친은 조그마한 채소가게를 했었다. 체호프는 어릴 때부터 가게를 도와야만 했다.
1867년 고향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예비학교를 다닌 후, 1869년 고전 교육을 목표로 하는 타간로크 인문학교에 입학한다. 1872년 성적 불량으로 3학년 과정을 반복하며, 3년 뒤 고대 그리스어 시험에 낙제하여 다시 5학년 과정을 반복한다.
지방정치와 교회합창에 너무 열중한 부친은 파산, 체호프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며, 학교 때문에 홀로 남은 체호프를 제외하고는 모두 모스크바로 나왔다. 15세의 체호프는 큰 형 알렉산드르와 함께 문학 창작에 열중한다. 두 형 알렉산드르와 니콜라이 그리고 동생 이반이 5년 과정으로 타간로크 학교를 졸업한 반면, 체호프는 1879년 8년 과정으로 학교를 졸업함으로써 대학 진학 자격을 얻는다. 같은 해 타간로크 모교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모스크바로 올라가 그 곳에 이미 자리를 잡은 부모 형제들과 재회하며, 같은해 10월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이 때부터 체호프는 의학공부를 하는 한편 타간로크에서 받는 장학금과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의 잡지에 유머 단편을 써서 그 기고료로 부모와 세 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1887년 연극 이바노프의 첫 상연이 있기까지 체호프는 문학잡지 《귀뚜라미(Strekoza)》, 《파편(Oskolski)》, 《자명종(Budilnik)》, 《페테르부르크 신문》 등에 100줄에서 150줄로 한정된 짧은 단편과 수필을 일주일이 멀다하고 기고한다. 특히 1883년에는 《Oskolski》에 매 이주일마다 모스크바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컬럼을 맡는다. 체호프의 글은 호평을 받았으며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이미 신진 소설가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이처럼 글을 써 돈벌이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883년 10월부터 의학 졸업시험 준비에 열중하여 다음해 9월 졸업을 했다. 그러나 23세 때 걸린 폐결핵[1] 이 체호프의 건강을 늘 위협하게 된다. 그 해 11월에 처음 결핵 증세로 요양하게 되었다. 1884년에는 또한 첫 단편집 《멜포네네의 우화》가 출판된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체호프는[2] 시베리아, 사할린섬 여행을 계획하고 치밀한 준비를 한 끝에 1890년 4월 모스크바를 출발했다. 사할린 섬에 유배된 수인(囚人)들의 비참한 생활은 체호프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새겼다. 그는 후에 이때의 기행문을 쓴 바 있다.
7개월 이상이나 걸려 모스크바에 다시 돌아와 1892년, 교외에 저택을 사서 양친·누이동생과 함께 살게 된다. 의사로서 이웃 농부들의 건강을 돌보거나 마을에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1899년,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얄타를 마주보는 크림 반도로 옮겼다.
1900년에는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나 1902년 정부가 고리키의 아카데미회원자격을 박탈하였을 때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아카데미회원자격을 반납하였다. 1904년에 체호프는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44년의 생애를 마쳤다.
체호프의 만년은 연극, 특히 모스크바 예술극단과의 유대가 강했고, 1901년에 결혼한 올리가 크니페르는 예술극단의 여배우이기도 했다.
그러나 체호프는 타간록 시대에 이미 연극에 흥미를 가졌으며, 직접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 시기에 장막물(長幕物) 2편, 1막물 희극 1편을 썼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모스크바에 나와서는 4막물의 것을 써서 상연하려고 꾀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 작품[3] 은 19세기 말의 러시아 사회상태를 배경으로 하여 태만한 환경에 반항하면서도 스스로는 아무런 의욕도 갖지 못하는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1887년에 쓰여진 <이바노프>는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교적으로는 <프라토노프>보다 앞섰으나 아직도 과잉된 극적 효과를 노리는 낡은 수법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다음의 <숲의 정(精)> 실패는 체호프의 극작을 한때 멈추게 했으나 이 무렵에 쓰인 1막물에는 <곰>(1888)이나 <결혼신청>(1889) 등 뛰어난 희극이 있다.
체호프의 극작 후기는 1896년의 <갈매기>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 및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바냐 아저씨>(1899), <세 자매>(1901), <벚꽃동산>(1903) 등은 모두 체호프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근대극 가운데 걸작이며 이러한 작품에서 체호프는 일상생활의 무질서를 그대로 무대에 옮긴 듯한, 이른바 극적 행위를 직접적 줄거리로 삼지 않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회화극(會話劇)을 확립했다.
<갈매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초연 때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으나 2년 후에 다시 새로 설립된 모스크바 예술극단이 다루었을 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희극으로서 쓰여진 이 작품을 오히려 비극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가 진정으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다고 체호프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후 체호프의 작품은 모두 모스크바 예술극단이 상연하게 됐다.
<바냐 아저씨>는 앞서의 <숲의 정>을 다시 쓴 것으로서 그 톨스토이즘이나 멜로드라마의 성격에서도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세 자매>는 초연 후 전집에 수록되자 다시 고쳐쓴 바 있다.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은 체호프의 44세 생일에 초연의 막이 올랐다.
체호프의 희곡(주로 후기의 4작품)은 오랫동안 러시아나 외국에서도 작자의 페시미스틱한 인생관을 반영한 러시아 귀족사회에 대한 만가(挽歌)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체호프 자신은 그러한 견해에 거의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정도였으며, 작품 안에 작자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칠 정도로 깃들여 있다는 것이 그 후의 정정(訂正)된 해석이다. <세 자매>나 <벚꽃동산>에서 서술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到來)에 대한 전망은 체호프가 죽은 지 얼마 후에 실현된 러시아 혁명을 예언한 것이라고도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체호프를 다만 비관적인 작가로부터 낙관적인 작가로 그 정의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할 것이다. 얼핏 보면 비극적이며 사진적(寫眞的)인 모방처럼 보이는 이러한 희곡이 사실은 매우 정교하게 계산된 극적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체호프의 작극술(作劇術)을 구명한다는 것이 그를 이해하려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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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 안톤 체호프 (박현섭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체호프 희곡선 - 안톤 체호프 (김규종 옮김, 시공사)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안톤 체호프 (오종우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