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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알퐁스 도데 (권지현, 손원재 옮김, 주변인의길)

by handaikhan 2023. 2. 4.

 

알퐁스 도데 작품선

알퐁스 도데 - 별 (1885년)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몇 주 동안이나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못 해보고, 그저 나의 개 라브리와 양떼들과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따금 몽드뤼르 산에 은거하고 있는 산사람이 약초를 캐러 근처를 지나가거나, 피에몽에서 일하는 숯쟁이의 검게 그을은 얼굴만 잠깐씩 눈에 띄었을 뿐이었지요. 하지만 그들은 소박한데다가 말도 통 없었습니다. 모두들 외롭게 지내다보니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잃어버렸나봅니다. 게다가 산 아래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름마다 음식가지를 싣고 농장에서 올라오는 노새의 방울소리가 들려오거나, 농장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나 노라드 아주머니의 붉은 모자가 언덕 너머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답니다. 이런날엔 그동안의 마을 소식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p.38)

 

그 일요일에도 보름치 양식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때가 되도 오지 않는 것이었어요. 아침에는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죠.

'대미사 때문에 늦어지나보다'

정오쯤에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그러니 길이 나빠져서 노새가 출발하지 못했나보다고 생각했지요. 오후 세 시쯤 하늘이 개이고 빗방울이 햇빛을 머금어 온 산이 반짝이고 있을 때, 풀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소리와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는, 불어난 시냇물의 노랫소리를 뚫고 마침내 노새의 방울이 즐겁게 딸랑딸랑 울려펴졌습니다. 마치 부활절에 울리는 큰 종소리 같았어요.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노새를 몰고 나타난 사람은 심부름꾼 아이도, 노라드 아주머니도 아니었습니다. 누구였을까요? 바로........스테파네트 아가씨였습니다. 진짜 스테파네트 아가씨 말입니다! 허리를 똑바로 펴고 등나무 바구니 틈에 앉아 있는 아가씨의 볼은 빨강ㅎ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산바람과 소나기가 내린 뒤 서늘해진 공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p.39)

 

"잘 있어, 목동아."

"살펴가세요, 아가씨."

아가씨는 빈 바구니를 가지고 결국 집으로 향했습니다.

언덕길로 내려가는 아가씨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자, 노새의 발굽에 차이는 돌멩이가 마치 내 심장에 하나하나 꽂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들이 떠나가는 소리를 끝없이, 끝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까지도 마치 꿈을 꾸는 사람처럼 꼼짝 않고 있었답니다. 움직이면 내 꿈이 날아갈까봐서요. (p.42)

 

무엇보다도 양떼들이 신기하게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아가씨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뽀얀 양처럼 내가 지키는 산장 한구석에서 잠을 잔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오늘밤처럼 하늘이 넓고 깊게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별은 또 얼마나 반짝거리던지........... (p.43)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답니다. 한 번이라도 바깥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잠든 밤에는 또 하나의 신비한 세계가 고요와 침묵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느껴보셨을 겁니다. 시냇물도 한층 맑은 소리로 노래하고, 연못 위에서는 자그마한 불빛들이 장난을 쳐댑니다. 그리고 산속의 정령들이 모두 자유롭게 오고 가며, 허공에는 들릴락 말락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떠다닙니다. 마치 나뭇가지가 뻗어나는 소리,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듣는 듯하죠. 낮은 인간과 동물들의 세상이지만 밤은 사물들의 세상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 무섭기도 하죠. 아가씨도 두려움으로 몸을 떨더니 조금만 소리가 나도 내게 몸을 바싹 붙여왔습니다. 그러던 중 저 아래 반짝이던 연못에서 출발한 길고도 서글픈 소리가 물결치듯 우리가 있는 곳까지 몰려왔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쁜 별똥별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쳐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방금 들린 소리가 마치 별똥별을 이끌고 온 것처럼 말이죠.

"저게 뭐야?"

"천국으로 가는 영혼이에요, 아가씨." (p.43-44)

 

"하지만 아가씨, 뭐니 뭐니 해도 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별은 바로 우리들의 별, 양치기 목동의 별이랍니다. 새벽녘에 양떼를 몰고 길을 나설 때나 저녁에 돌아올 때 길을 안내해주죠. 목동들 사이에선 아직도 이 별을 마글론느라고 부르곤 한답니다. 7년마다 프로방스의 피에르와 만나 결혼식을 올리는 아름다운 마글론느 말이에요."

"그게 정말이야? 별들도 결혼을 해"

"그럼요, 아가씨."

별들이 어떻게 결혼하는지 설명해주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갑자기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운 뭔가가 내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무거워진 아가씨의 머리였지요. 곱슬곱슬한 머리에 매단 리본과 레이스가 앙증맞게 사그락거렸습니다. 아가씨는 그렇게 꼼짝도 하지 않고 밤하늘의 별빛이 엷어지고 급기야는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있었답니다. 나는 아가씨의 잠든 모습을 자꾸만 들여다보았습니다. 가슴이 울렁거리기는 했지만, 맑은 밤하늘 덕택에 아름다운 마음만 간직할 수 있었지요. 우리 주위로는 별들이 마치 순한 양떼처럼 천천히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아 잠들어 있다고.... (p.46-4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소나기 - 황순원 (다림)

별 - 황순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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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년 5월 13일 ~ 1897년 12월 16일)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이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도크 지방의 님(Nîme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뱅상 도데는 비단 제조업을 하고 있었지만 불운을 부르는 사람이었고 하는 일마다 실패해서 알퐁스 도데의 어린 시절은 상당히 불우했다. 알퐁스 도데는 자라서 리용(Lyon)을 떠나 알레스(Alès)로 가서 교사 생활을 했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심한 노이로제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1년여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었으며 후에 그의 회고로는 "알레스를 떠난 몇달 뒤에도 나 자신이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 가운데 서 있는 듯한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사 생활을 그만둔 뒤 3살 연상의 형과 함께 살았는데 형은 파리에서 기자가 되고 싶어했다. 알퐁스도 형을 따라서 시를 썼는데 쓴 시들을 모아 <사랑하는 여자들>을 출판했다. 이는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르 피가로지>가 도데를 기자로 기용했고, 2~3편의 희곡을 써서 장래성을 주목받았다. 한편으로 나폴레옹 3세의 대신이자 입법회의 의장인 샤를 드 모르니 후작의 후원을 받아서 모르니 후작이 사망하는 1865년까지 모르니 후작의 비서로서 활동했다.
1866년, 첫 소설을 써서 크게 성공하게 된 그는 이후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1868년에 <Le Petit Chose>라는 첫 자전적 장편 소설을 썼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밝은 타타린>과 3막짜리 희곡 <아를의 여인>을 썼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한 뒤, 집필한 희곡 <프로몽과 리제르>가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어권에도 주목을 받을 정도였다.
이후로 <나바브> 등의 여러 편의 소설과 희곡을 쓰는 등 작가로서의 위상은 뚜렷해졌다. 1867년에 쥴리아 아라드와 결혼했는데 그의 부인도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1883년 도데는 자신이 아카데미 회원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쓴 기자와 결투를 벌였고 자신의 부인에 대한 안좋은 기사를 쓴 기자와도 결투를 신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약을 잘못 쓴 탓에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1897년 12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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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단편선 - 알퐁드 도데 (김사행 옮김, 문예 세계문학)

별들 - 알퐁스 도데 (김명섭 옮김, 새움)

알퐁드 도데 (임희근 옮김, 현대문학 세계단편선)

별 - 알퐁스 도데 (최복현 옮김, 인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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