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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통도사 가는 길 - 조성기 (민음사)

by handaikhan 2024. 3. 9.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3

 

목차

 

통도사 가는 길
불일폭포
우리 시대의 소설가
영화구경
우리 시대의 무당
위대한 창녀
공습경보
한 문장이 채 되지 않는 이야기
홍소령기
만화경
하얀 가시관
커튼 속
유년 광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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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 통도사 가는 길 (1992년)

 

나는 왜 통도를 ' 道'로 알았을까.

 

배낭 하나를 어깨에 메고 훌쩍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실직자도 아니면서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여간 큰 특권이 아닙니다. 내 친구 변호사는 자기도 자유직이라면서, 하루 동안 임의로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우리는 제네바로 간다> 식으로 술집 아가씨를 고향으로 데려다주고 온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하루 이상은 그런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사실, 내가 판사나 변호사가 되지 않고 목사가 되지 않고 작가가 된 것은, 이 여행의 자유를 위함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디 여행의 자유뿐이겠습니까.

나는 배낭 속에 세면도구들과 함께 굴원의 시집이라 할 수 있는 <초사> 제1권과 제2권을 넣고 떠났습니다 .명지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책으로, 송정희 교수가 번역을 하였더군요. 일전에 태종출판사에서 하정옥 교수 번역으로 내놓은 굴원 시집은 이미 다 읽었는데, 이번에 또 <초사>를 가지고 간 것은 번역의 차이로 인한 묘미를 느껴보려 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번 시집이 더 많은 분량의 시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아마 굴원이 지었다고 하는 시는 다 실은 모양입니다.

왜 하필 굴월의 시집을 들고 갔느냐구요. 요즈음 내가 굴원의 생애를 소설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의 상태 때문이라고 해야 되겠지요. (p.7-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굴원 - 장기근, 하정옥 (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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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반야심경>의 구절들이 하얀 나비떼들처럼 나의 노리에서 퍼덕이며 날아올랐습니다. 그 이백육십 자밖에 되지 않는 <반야심경>을 아예 외어버린다고 작정하고 한번 쭉 머릿속에 집어넣은 적이 있는데, 매일 독송을 하지 않으니 자연히 기억이 희미해져 단편적인 문구들만 앞뒤 순서가 뒤바뀐 채 간혹 의식의 표면으로 불현듯 떠올라오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맨 앞부분과 맨 뒷부분은 제법 순서대로 외고 있지요.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반야심경>의 주제는 알다시피 모든 것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물질도 없고 감각도 없고 의식도 없고 의지도 없고 지식도 없고, 눈과 귀와 코와 혀도 없고 몸과 마음도 없고, 형태와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법도 없고, 눈으로 보는 영역에서 의식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무명도 없고 늙음과 죽음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고 지혜도 없고 무언가 얻을 것도 없다 이거지요. 얻을 것이 없으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일체의 두려움이 없어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 완전한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지요.

없을 무 자가 스무 번 이상이나 반복되고 있는 <반야심경>을 매일 마음써서 독송한다면, '있다'라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겠지요. 말하자면 공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어느 날 새벽 세 시경에 일어나 아득한 적막 속에서 <반야심경>을 다시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순간에는 그야말로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파고들어 침침한 두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습니다. 이런 순간이 좀 더 지속된다면 현장법사와 같이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반야심경>은 도가 없으니 득도할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요. (p.10-1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반야심경 마음공부 - 페이융 (허유영 옮김, 유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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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자들은 오르가슴에 오를 때 소리를 내질러야 하는 걸까요. <양철북> 영화에 보면 여자가 너무도 세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여관방 창문이 박살나는 희한한 장면이 나오지요. 마땅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할 <프라하의 봄> 영화에서도 얼마나 여주인공이 세게 소리를 지르는지. 현대에 남아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원시의 소리들 중 하나가 바로 저 오르가슴을 선포하는 여자의 소리이지요. 진정 꾸밈없는 싱싱한 생명의 소리, 그리고 죽음의 소리. 나는 극에 달한 여자의 그 교성 속에서 생명과 죽음이 맹렬히 만나는 것을 체험하곤 하지요. 하지만 일생동안 그런 소리 한 번 힘차게 내지르지 못하고 늙어가는 여자들도 있긴 있지요. (p.1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양철북 - 귄터 그라스 (장희창 옮김, 민음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군데라 (이재룡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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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이십만의 교사들 중에서 교원노조 간부 천오백여 명을 용공분자로 몰아 대량 검속하고, 그중에서 또 골수분자 오십사 명을 전국에서 추려 군사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서대문 형무소로 이송하는 그 가운데 아버지가 끼여 있었으니, 감옥살이는 각오해야만 할 판이었습니다.

그때 감옥소로 향하는 남편을 전송하러 삼랑진까지 왔다가 황량한 플랫폼에 내던져진 듯 서 있게 된 어머니의 나이는 갓 서른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나이는 어머니보다 꼭 십 년 위이므로 그 무렵 아버지는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지요. 바로 지금의 내 나이입니다.

나이 마흔으로 넘어서니 벌써 인생 후반기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착잡한 사념들이 오가는데, 아버지는 그 나이에 시대의 한복판에서 머리띠 두르고 치열하게 싸우다 전봉준처럼 서울로 압송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삼십 년이 지나 어머니가 아버지를 전송했던 그 자리에 내가 억겁 인연처럼 서 있게 되었습니다. 세속적으로 이야기하면, 어머니의 인생은 여기 삼랑진 플랫폼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 나이보다 열 살이나 어린 어머니가 이 자리에 외롭게 서서 시대와 인생에 대하여 느꼈을 두려움과 불안의 무게. 나는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어깨를 짓누른 그 인생의 짐들을 환히 보는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서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를 진정 만나는 기분이었습니다. (p.18-1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녹두장군 - 송기숙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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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정적인 실수, 아니 실패는 그녀의 목소리를 진정 관음했어야 할 시점에 그만 청음을 해버린 것이었지요. 평소에는 관음을 잘하다가 왜 그때는 청음을 해버렸는지.

"나를 안고 싶으세요? 그럼 안아주세요."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을 때, 나는 그만 관음하는 것을 까먹고 덜컥 청음을 해버린 것이지요.

물금역에 내려 역사를 빠져나오면서 흘끗 역사 지붕 쪽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거기 한자와 함께 역명 표지가 붙어 있더군요. 물금(禁). 말 물, 금할 금. 참으로 희한한 한자의 결합이었습니다. 원래 물금이라는 것은 순 토박이말인데 한자어를 어새갛게 차용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요. 금하지 않는다. 무엇을 금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금하지 않는 대상마저 없으니 좀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무한한 자유의 공간 속으로 갑자기 내던져진 기분이었지요. 자유의 현기증, 자유로부터의 도피, 뭐 이런 말들을 사용한 학자가 있기도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약간 어찔해졌지요.

아무것도 금하지 않는 물금의 세계로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두리번거리며 걸어들어갔지요. 사람들의 표정이 정말 물금의 상태에 있는 듯했지요. 우리가 인간관게에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도 바로 이 물금의 상태가 아닐까요. 금지하고 있던 것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서 허락해 주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 말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는 더욱 그렇지요. 처음에는 손을 잡는 것을 금지하다가 허락해 주고, 입맞춤을 금지하다가 그것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허락해 주고,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 보면 정신과 육체의 완전한 합일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윤리와 도덕, 기존 질서라는 것이 있어 여간 복잡하지가 않아요. 거기다가 종교적인 기준까지 합세하면 훨씬 착종을 이루게 되지요.

그녀 역시 나에 대해 물금의 상태에 있는 듯하다가 어느새 기존의 윤리 뒤편으로 숨고, 어떤 때는 종교 뒤편으로까지 숨으며 금지 팻말을 높이 치켜들곤 하였지요. 그래서 꼭 장독대를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을 하는 듯했지요. 여자는 어릴 적부터 고무줄뛰기를 하며 고무 금을 사이에 두고 이쪽으로 팔짝 건너왔다, 저쪽으로 폴짝 건너갔다 하는 연습을 되풀이하기 때문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금을 잘 건너오고 잘 건너가고 하는 모양이지요. 그런데 남자들은 어릴 적부터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고무줄을 주머니칼로 끊어먹기를 잘하지요. 아예 금을 없애버리는데 익숙한 편이지요. (p.21-22)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 - 에리히 프롬 (김석희,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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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이런 꿈을 꾸기도 하였지요. 나는 힘들여 언덕을 올라갑니다. 그 언덕만 넘으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언덕배기로 올라와 보니 엄청나게 큰 문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문은 거무튀튀한 굵은 나무들로 짜 맞추어진 것으로 차라리 거대한 벽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실 벽이라고 해도 되는 것이, 어디서 어디까지가 문짝에 해당하는지 도통 가늠을 할 길이 없거든요. 비록 문짝 부분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워낙 커서 온몸을 다 사용해 밀어도 끄덕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 문, 아니 벽 앞에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문 앞에 서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져 오는데, 그것은 그 문 자체가 하나의 세계요 길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문은 꿈속에서 종종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하동 근방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세워져 있는 듯도 했고, 남한과 북한의 경계인 휴전선 일대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하여튼 내 의식 속에서 부각되는 갈등과 관련하여 그 문이 서 있는 경계가 그때그때 정해지는 듯싶었습니다.

이번에도 사실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그 문을 꿈속에서 보았습니다. 그 문은 그녀가 누워 있는 방과 내가 누워 있는 방의 경계에 세워져 있는 듯이 여겨졌습니다. 꿈속에서는, 집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집들을 다 삼킨 듯한 거대한 문만이 서 있었습니다.

그 문이 꿈속에서 나타날 적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까마득히 높은 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어김없이 문 꼭대기에 '통도사'라는 세 글자가 하얀색으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통도, 통 - 도. 꿈 전체가 '통도'라는 기이한 울림으로 가득 메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전율하게 마련이지요.

그런 꿈을 여러 번 꾸었으면서도 나는 통도사를 선뜻 찾아나서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런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을 꺼렸는지도 모릅니다. 왜 이런 꿈을 종종 꾸는 것인가. 나 자신을 분석해 보아도 그 이유를 잘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적 통도사 이름을 들으면서 그 '통도'라는 울림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삶에서 길이 자주자주 막히는 것을 경험하면서 길을 뚫어나가고 싶은 무의식적인 소원이 통도라는 말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대강 이 정도밖에 생각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와 나의 사이에 막힌 길을 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몹시 낙담한 가운데 있을 때 나는 또 그 꿈을 꾸었고, 꿈에 이끌리듯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통도사를 이제야 찾아나선 것이었습니다. 임금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굴원의 시집을 들고. (p.24-26)

 

통도사 입구 마을의 한모퉁이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장거리 공중전화 박스. 나는 어느새 그 전화박스 속으로 들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자신을 상상합니다. 이 시간쯤이면 그녀 혼자 집에 있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십중팔구 그녀가 전화를 받을 것입니다. 내 목소리르 확인한 그녀는 갑자기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그녀가 한번 침묵하면 그 침묵의 흡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의 머릿속에 어지러이 떠돌던 언어들까지 모조리 빨아들이고 마는 법이므로,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전에도 그녀와 나느 그렇게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긴 침묵으로 대치한 적이 종종 있었는데, 그러면 나는 그 위압적인 침묵에 압도 당하여 그만 두 손을 번쩍 들고 속히 항복을 해버리고 싶기만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그 침묵에 질려버리고 말 것이 뻔한데 내가 어떻게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그 깊은 침묵의 밑바닥에서 헤어나와 꼭 한마디 말이나마 그녀에게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여기는 통도사 입구라고.

나는 심호흡을 해가며 전화박스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여기까지 먼 길을 달려내려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녀가 있는 곳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고, 먼 데서 걸려온 나의 전화를 그녀가 매정하게 대하지만은 않으리라는(물론 얼마 동안의 침묵은 각오해야 되겠지만), 소박한 생갃들을, 내가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방금 내가 나의 생갃들을 '소박한 생각'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녀가 들으면 아마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생각들을 소박한 생각이라고 둘러대었다고 말입니다. 멀리 떨어져와서 전화를 거는 나의 '교활한' 의도마저 꿰뚫어볼 그녀이기에, 나는 결국 전화박스로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을 끝내 포기하자, 나는 한나절의 여독까지 겹쳐 그만 온몸의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통도사까지 걸어들어간다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져 포니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는 새로 닦아놓은 신작로를 시원하게 달려나갔습니다. 오른쪽으로 보니 양편에 아름드리 노송들이 우거진 또 하나의 길이 개천을 사이에 두고 신작로와 나란히 뻗어 있었습니다. (p.27-28)

 

동쪽을 제외한 다른 쪽 문들은 잠겨 있거나 접근이 불가능하여 나는 대우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동문으로 해서 조심스럽게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그곳은 희한하게 도 온통 푸르스름한 세계였습니다. 그렇게 황홀한 정더로 아름답게 바래가는 단청는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붉은색이 먼저 퇴색되어 염염해지고 푸른색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그 단청은,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그윽하게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법당 안은, 불단을 향해 열심히 절하고 있는 고동색 바지 차림의 한 아가씨밖에 없어 고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나는 발끝으로 왼편으로 돌아 아가씨와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그만 주저앉듯이 반가부좌 자세로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허공이었습니다. 허공으로 인한 충격이 나를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광경에 넋을 잃어버렸습니다.

불단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붉고 푸른 연화문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삼층 불단은 그 너머 허공으로 통해 있었습니다. 그 허공은 막연한 형태로가 아니라 가로누운 긴 직사각형으로 반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아한 허공이었습니다.

부처는 그 허공으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반야심경>의 구절대로라면 부처도 없어야 마땅합니다. 나는 얼어붙은 듯 그대로 앉은 채 부처가 사라진 그 <반야심경>의 세계를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머리끝에서부터 서서히 전율이 일어나더니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법열이라 하는지 모르지만, 설령 법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요소까지를 포함하는 거라면 나도 법열의 언저리에 앉아 있는 셈이었습니다. 허공을 향해 끝없이 절하고 있는 아가씨, 허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 불가사의한 상징의 힘.

한순간, 오층 석탑의 무게로 나를 내리누르고 있던 그녀의 존재가, 시선이 머물고 있는 허공 솏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나마저도 허공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그녀도 없고 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텅 빈 삼랑진역 플랫폼에 어머니만 홀로 서 있었습니다. 허공 속에서도 법당 뒤편 금강계단의 석종부도 꼭대기가 마치 선덕여왕의 한쪽 유방처럼 봉긋이 떠 있었습니다. 그 유방의 젖을 먹고 자라는 듯 금강게단 너머로는 신선한 녹색의 숲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석종부도 속에 모셔져 있다는 싯다르타의 사리마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기를 바랍니다. (p.29-3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권혁준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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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趙星基, 1951년 3월 30일 ~ )

대한민국의 작가, 소설가, 목사, 교육자이다.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였으며, 1971년 단편 〈만화경(萬華鏡)〉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근조절기(謹早節期)》,《라하트 하헤렙》, 1970년대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의 실태를 밝힌《야훼의 밤》 등이 있다. 미성숙한 개인이 세계 안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삶의 근원적인 자각을 다루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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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가는 길 - 조성기 (문학과지성사)

왕과 개 - 조성기 (책세상)

난세지략 - 조성기 (실크로드)

야훼의 밤 - 조성기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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