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나를 가로 막는 나에게 - 알프레드 아들러>
삶이 힘들다는 당신에게
삶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힘든 것이다.
어려움에서 나를 구출해내는 것도,
곤경에 빠뜨리는 것도 나 자신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뭔가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에는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추적해보아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항상 당신을 가로막은 것은 당신이었다. (p.16)
생각의 함정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해줄 수 있는 생각은 붙잡고
방해되는 생각은 거부한다.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때에도
자기 생각을 지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만 받아들인다.
이로운 것들은 의식의 영역에 두지만,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무의식으로 밀어넣는다. (p.35)
착한 사람의 의미
자기 자신은 대단히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지독한 이기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스스로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착한 사람인 경우도 많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다른 사람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p.3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인생의 태도 - 웨인 다이어 (이한이 옮김,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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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억은 주관적이다
경험과 마찬가지로 모든 기억도 주관적이다.
나를 보고 웃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내가 기분이 좋으면 그가 미소 짓는 것으로 보일 것이고,
내가 마음이 꼬여 있으면
그가 비웃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사실만 기억한다.
그러므로 기억은, 시시때때로 바뀌는 감정만큼이나
믿을 것이 못 된다. (p.84)
트라우마란 없다
트라우마의 추역으로
무엇인가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연구 끝에,
사람은 종종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고자
필요한 트라우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해결하기 어려운 추역, 절대적 사건이란 없다.
그렇다고 느끼는 해석만 있을 뿐이다. (p.88)
성공의 원인, 실패의 원인
어떤 경험도 그 자체로 성공의 원인이 되거나
실패의 원인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서
쓸만한 고통의 기억을 재구성해내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즐겁고 잘 되고 있다면
기억하지 않았을 일일 수도 있다.
이처럼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의미는 상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이름을 붙이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p.89)
왜 경험해도 달라지지 않는가
경험을 더 한다고 해서 꼭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회피하는 법을 배우며
그 어려움에 특정 태도를 취한다.
어떤 공식 같은 거을 만들어 재빨리 대처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이 바뀌지는 않는다.
무엇을 겪든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서
항상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필요한 것만 느끼는 것이다. (p.92)
문제는 사다리가 아니다
내가 교실에 사다리를 갖고 가서 칠판에 걸쳐놓고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 앉아 수업한다고 해보자
학생들은 내가 미쳤다고 할 것이다.
왜 사다리 위에 올라앉아 있는지 모르는 채로.
하지만 만약 그들이 내가 병적인 열등감이 있어서
항상 사람을 밑에다 두고 봐야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동정은 할지언정 나를 미쳤다고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목표 달성을 위해 나름 최선의 방법을 동원했다고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제는 사다리가 아니다.
단순히 사다리가 문제라고 보고 사다리를 치워버리면
교탁 위로 올라가든, 점프해서 칠판위로 붙든,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개인심리학에서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처럼 드러난 증상이 아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으로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지 '목표'에 초점을 맞춘다
오로지 목표를 정상화해야만 습관과 태도를 고칠 수가 있다.
목표를 새롭게 정립하면
자연스럽게 나쁜 습관, 잘못된 태도를 버리게 된다.
목표가 바뀐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다. (P.100-101)
외모와 성격
성인이 되면
유아기에 비해서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만,
성격은 별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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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아들러 ( Alfred Adler 오스트리아, 1870-1937)
오스트리아의 빈 근교 펜칭의 유대인 상인 가정에서 4남 2녀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구루병으로 4살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뗐을 정도로 병약했으며 수레에 2번이나 치인 적이 있었고 폐렴과 홍역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빈 대학교 의학부 한참 선배이기도 한 프로이트의 강연에 매료되어, 그의 문하에서 빈 정신분석학회(WPV = Wiener Psychoanalytische Vereinigung = Vienna Psychoanalytic Society)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후 프로이트의 저서인 꿈의 해석을 서평했으나, 1912년 분파하여 개인심리학회을 창시했다. 프로이트의 범성욕설에 반대한 것인데, 덕분에 성에 대해 보수적인 교육자, 종교인들에게 그의 정신분석은 환영을 받았다.
프로이트의 원인론적 분석에서 탈피하여 목적론적 분석을 기반으로 자신의 학설을 세웠다. 대표적인 것이 개인심리학이며, 이것은 신프로이트 학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들러와 입장을 같이하는 흐름을 "아들리안 학파"라고도 부른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빈에서 정신병원을 개원했으나 나치당이 아들러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2년에 강제 폐쇄시켰다. 결국 그는 1934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롱아일랜드 의과 대학의 교수직을 맡았다. 1937년 5월, 강연차 스코틀랜드의 애버딘 대학교를 3주일 예정으로 찾았었는데 강연 뒤 심근경색으로 길거리에서 돌연사했다.
아들러의 주된 관심은 우월함의 추구, 육체적 허약함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권력의 추구, 출생순위에 따른 성격의 형성 등이었으며 프로이트의 환원적인 관점과도 거리를 두었다. 아들러의 관점은 이후 의미치료의 창시자인 빅토르 프랑클에 의해 비판받기도 했다.
그리고, 과학의 기준으로써 반증주의를 제시한 칼 포퍼의 첫 번째 비판거리가 되기도 했다. 칼 포퍼는 빈 대학교 사회주의 서클에서 활동했으며 아들러 심리학에도 빠져 관련 사회사업까지 함께 할 정도였으나, 마르크스주의와 아들러 심리학의 도그마성에 질려 둘 다 포기하게 되고, 빈 대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강의를 듣고 과학의 방법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결국 자신이 내놓은 반증주의에 대한 최초의 문헌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아들러 심리학을 반증불가능한 대표적 비과학이라고 비판하게 된다.
무의식을 정립하여 사상계를 뒤흔든 프로이트나 종교학, 문화인류학 분야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융에 비해 아들러는 교육학, 교육심리, 사회복지 분야에서 간간이 언급되거나 프로이트나 융을 언급할 때 묻어가는 식으로 언급될 뿐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들러의 목적론을 기반으로 일본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쓴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면서 최근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미움받을 용기가 작가 기시미 이치로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들러의 이름만 도용한 수준의 사기 서적이라는 것으로, 목적론을 포함, 아들러의 철학과 전혀 상관이 없거나 정 반대되는 기시미 이치로 자신만의 주장을 왜곡과 날조를 통해 아들러의 말인 양 퍼뜨려 버렸다는 것이다.
질투라는 관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는데 부러움은 적당할 경우 아주 정상적이고 유익한 사고방식이라고 한 반면 질투는 어렵고 위험한 정신자세라고 말하면서 질투심에 불탄 사람은 유익한 경우가 절대로 없다고 못을 박았다.
페미니즘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여성이 남성성을 추구하는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지 이에 대한 서술을 길게 했는데 이 현상을 부러움의 특이한 유형으로 해석했다. 그가 살았던 시기가 1800년대 말~1900년대 초라는 걸 감안했을 때 그 당시 유럽사회에 퍼진 서프러제트 운동을 관찰하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러 본인도 문화권에서 남자들이 우선적으로 선택되는 사실이 맞다면서 남자가 되기를 원하는 소녀들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도덕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래서 소녀들이 남자 같은 옷을 입고 다니거나 짧고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다니고 남자들이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유익하고 도덕적이나 소녀들이 남자의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는 태도는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 그렇게 안 부르면 화내는 소녀들도 몇몇 있었다고 하는데 그 태도가 단순한 장난이 아닌 좀 더 깊은 심리적 의미일 경우 미래에 성역할에 대한 불만과 결혼에 대한 혐오, 그리고 결혼 후 여자의 역할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서 남자들의 악덕을 택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쉽게 말하면 남자들 중에서 범죄나 트롤링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걸 남자들의 특권이라고 착각하면서 배울 거라는 의미. 아이러니한 점은 우리나라에선 아들을 바라던 세대가 딸을 낳으면 실패의 의미로 남자의 이름으로 지어서 딸의 존재를 부정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간혹 남자 이름을 가진 할머니들이 이런 예시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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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심리학 입문 - 알프레드 아들러 (김문성 옮김, 스타북스)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 알드레드 아들러 (박제이 옮김, 와이즈베리)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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