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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3. 시

김소월 시집 - 김소월 (범우사)

by handaikhan 2023. 2. 1.

김소월 시집 (사루비아총서402)

 

김소월 -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p.9)

 

 

 

김소월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p.43)

 

 

 

김소월 -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p.46)

 

 

 

김소월 - 먼 후일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지기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p.64)

 

 

 

김소월 - 초혼

 

산신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p.71-72)

 

 

 

김소월 - 산유화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p.131-132)

 

 

 

김소월 -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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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金素月, 1902년 9월 7일 ~ 1934년 12월 24일)

일제강점기의 시인이다.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지만, 호인 소월(素月)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본관은 공주(公州)다.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 자택에서 향년 33세로 병사한 그는 서구 문학이 범람하던 시대에 민족 고유의 정서에 기반한 시를 쓴 민족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평안북도 곽산군에서 성장하였다. 1904년 처가로 가던 부친 김성도는 정주군과 곽산군을 잇는 철도 공사장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당한 후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이후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조부의 손에서 컸다. 김소월에게 이야기의 재미를 가르쳐 주어 영향을 끼친 숙모 계희영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평안북도 곽산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평안북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조만식과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 《창조》5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5년에는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을 발간했다.
1916년 오산학교 재학 시절 고향 구성군 평지면의 홍시옥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3·1 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1923년에는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 무렵 서울 청담동에서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영대》동인으로 활동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도왔으나 일이 실패하자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구성군 남시면에서 개설한 동아일보 지국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본래 예민했던 그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친척들한테도 천시를 받았고 일본의 압박으로 부인과 동반자살 기도까지 했다.
류머티즘으로 고생을 하다가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3세였다.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라면서 쓴웃음지으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소월이 자살한 거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소월의 증손녀가 증언한 바로는, 김소월은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아편을 먹곤 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인해 아편 과다복용의 후유증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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